[복거일 칼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책무

입력 2017-02-12 18:06  

지금 상황은 시장경제의 위기지만
시장 지키려는 자유주의자는 극소수
연구소·학회 등 단체들이 함께 나서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지금 우리 시장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시장경제가 가장 나은 경제체제고 경제가 사회의 근본이므로, 이번에 시장경제가 맞은 위기에 대한 대응은 대한민국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적 위기가 한두 가지 요인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불안한 상태에 일시적 요인이 여럿 작용하면서 위기가 닥친다. 우리 사회는 뿌리가 깊지 못해 늘 흔들린다. 근대화가 늦었고 일본 식민 통치로 자생적 전통이 자라날 새가 없었다. 그래서 구성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뿌리가 깊지 못하다. 게다가 체제에 적대적인 세력이 너무 크다. 안정된 서양 사회들에선 10% 미만인데, 우리 사회에선 20%가 넘는다고 추산된다.

자연히 사회주의적 풍조가 드세다.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사회주의 경제 프로그램을 뜻하는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건 덕분에 당선됐다고 할 정도다. 기회의 평등과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므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그 체제를 다시 ‘민주화’한다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명령경제의 특질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풍토에서 노동조합이 득세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노동의 공급을 노동조합이 독점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니, 시장경제의 이상에서 점점 멀어진다. 노조가 제기하는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크지만, 우리 사회에선 노조의 부정적 영향이 클 뿐 아니라 전반적이다. 좌파 교원노조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 미치는 영향은 전형적이다.

재벌에 호의적인 사회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선 반감이 유난히 심하다. 재벌이 효율적이어서 경제를 지탱할 뿐 아니라 가장 믿을 만하다는 사실은 모두 안다. 재벌 욕하는 사람들도 재벌이 만든 제품을 선호하고 자식들을 재벌 기업에 들여보내려 애쓴다. 재벌에 대한 위선적 반감은 시장경제를 공격하는 세력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조건은 우리 사회를 늘 불안정하게 한다. 근자에 일시적 요인 여럿이 한꺼번에 나와서 불안정한 우리 사회를 기우뚱거리게 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로 집권 세력이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함께 잃었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던 개혁 정책들도 좌절됐고 부정적 평가까지 받게 됐다. 다음, 힘이 부쩍 커진 국회를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야당이 지배하게 됐다. 이제 일시적 다수의 의지로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반시장적 법들을 만드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됐다. 셋째,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높아져서 선거 정국이 갑자기 닥쳤다. 주요 후보는 표를 얻을 만한 민중주의적 정책을 다퉈 내세우는데, 이들 터무니없는 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법이 될 터다. 넷째, 재벌 총수들과 박 대통령이 뇌물을 주고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으로 재벌에 대한 시민의 부정적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마다 ‘재벌개혁’을 내세우면서 시장경제의 터전을 허무는 정책들을 공약한다. 다섯째, 시장경제를 지키는 활동의 중심인 전경련이 마비됐다. 자연히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걱정스럽게도 시장경제가 뿌리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적 요인이 겹친 이번 위기를 걱정하는 시민은 적다. 정치나 안보에선 지식과 소신을 갖춘 시민이 많지만, 경제에선 사정이 다르다. 지식인 가운데 시장을 이해하고 지키려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는 극소수다.

당연히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분발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 위기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미약하다. 지금 야당이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만이 국회에 찾아가서 부당함을 알렸다. 시장경제를 위한 단체와 연구소, 학회가 적지 않은데 이들이 함께 나서지 않은 것은 아픈 실책이다.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노력은 비록 당장 효과가 없는 듯해도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의 건강에 이바지한다. 그런 노력 하나하나가 ‘마지막 지푸라기’를 시장경제의 휘어진 등에서 걷어낸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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