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서 구제역 감염 소 추가
연천에선 7년 만에 'A형 구제역'
돼지고기는 90%가 국내산인데
1100만마리 백신 안 맞아 '비상'
[ 구은서/오형주 기자 ]
“(구제역이) 돼지에까지 퍼지면 끝장입니다.” 한우의 구제역 바이러스 확진 판정이 잇달아 나온 12일, 국내 최대 축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마장동 일대에는 불안이 감돌았다. 소고기는 유통 물량의 절반가량이 수입산이라 그나마 충격이 덜하겠지만 90% 이상이 국내산인 돼지고기는 “얘기가 다르다”는 게 상인들의 이구동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1100만여마리 돼지 대부분이 구제역 변종인 A형 바이러스 백신을 맞지 않아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닭 소 이어 돼지에까지 번지나
구제역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12일 충북 보은의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에 감염된 소가 추가로 발견됐다. 지난 5일 올겨울 들어 첫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젖소농장에서 2.4㎞ 떨어진 곳에 있는 농장에서다. 전국 구제역 확진 건수가 여섯 건으로 늘어났다.
이번 구제역은 사상 처음으로 O형과 A형, 완전히 다른 두 개 유형으로 창궐하고 있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국내 돼지에서는 A형이 발생한 사례가 없었고, 전부 O형만 발생한 터라 A형 바이러스 대비책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말했다. 올 들어 발생한 전국 여섯 건의 구제역 가운데 혈청형이 확인된 5건 중 4건이 O형이다. 하지만 경기 연천 소 농가에서 7년 만에 A형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긴박해졌다.
돼지 농가에서 A형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축산업계의 우려다. 검역당국도 A형 구제역이 돼지 농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며 부인하지 않고 있다. 돼지는 구제역에 걸리면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 바이러스 양이 소보다 최대 1000배가량 많아 삽시간에 퍼질 위험도 크다.
국내에 있는 A형 백신은 소 전용으로 수입되는 O+A형 백신뿐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확보한 재고가 190만마리분에 불과해 소 일제 접종(283만마리)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사육 돼지는 약 1100만마리에 달한다. 돼지에 접종할 A형 백신을 급하게 구해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불안한 자영업자들
구제역이 돼지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삼겹살집 등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자영업 시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껍데기 곱창 등 돼지고기 부속물을 파는 이모씨(65)는 “오래 거래한 서울의 유명 식당들도 손님이 끊겼다며 속속 문을 닫고 있다”며 “가뜩이나 불황으로 장사가 안되는데 전염병까지 돌아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우려했다.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축산물 가격도 오름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5일 보은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한 직후 한우 등심 1등급 소비자가격은 6일 ㎏당 7만5905원에서 10일 7만8294원으로 나흘 만에 약 2400원 뛰었다.
사정이 이렇자 도매시장에선 사재기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30년째 마장동에서 한우유통업체를 운영 중인 정모씨(54)는 “구제역이 계속 퍼져서 도축장이 폐쇄되기라도 하면 물량이 완전히 끊길 것”이라며 “유통업체 사이에서는 한우를 미리 구입하려는 눈치작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찾은 주부 서선희 씨(43)는 “닭에 이어 소까지 감염병이 퍼지니 식탁에 뭘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체 감염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구제역 바이러스는 76도에서 7초만 가열하면 모두 죽는다.
구은서/오형주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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