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국과 환율게임 즐길 듯
한국, 경상흑자 선제적 축소 필요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네덜란드 총선(3월),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3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4월), 프랑스 대선(4~5월), 선진 7개국 정상회담(5월). 올해 상반기 예정된 굵직굵직한 현안이다. 단연 관심이 높은 것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다. 때맞춰 환율조작 우려가 높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동반 4월 위기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전략가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공생적 게임’보다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제로섬 게임’을 즐긴다. 급부상한 ‘한·중·일 동반 4월 위기설’을 트럼프식 환율 게임으로 그 가능성과 결과(pay off·선물보따리 크기)를 추정해본다.
트럼프로서는 한·중·일 3국을 대상으로 ‘환율조작’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일본 경제는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지 못하면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주장한 ‘엔고의 저주(경기침체→엔고→수출 감소→추가 경기침체)’에 걸린다. 환율조작에 걸려 더 이상 엔저를 유도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한계에 봉착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위안화 환율로 본다면 현 수준(1달러=6.8위안대)이 ‘스위트스폿(최적점)’이다. 트럼프의 위안화 절상 요구를 받아들이면 수출이 둔화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가 불거질 소지가 크다. 하지만 반발해 위안화가 추가 절하되면 외환보유액이 3조달러 밑으로 떨어진 여건에서는 금융위기 우려가 고조될 가능성이 커져 절상될 때보다 더 부담스럽다.
한국도 일본보다는 중국과 비슷한 처지다. 원화 가치가 현 수준(1달러=1150원 내외)보다 더 절상되면 작년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원화 가치가 절하되면 자금이탈 우려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으나 절상될 때보다는 여유가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달러 가치가 ‘강세’보다 ‘약세’가 돼야 한다. 국익 확보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최우선순위를 두고 신속하게 추진하는 보호주의 정책의 주목적은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있다. 미국 무역 적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자국통화 가치가 절하(달러 강세)되면 트럼프는 취임 초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달러 가치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선진 6개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대에 움직이고 있다.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3% 이상 고평가됐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성장률은 0.75%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 경제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달러 강세로 보호주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무역적자가 커지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된다. 트럼프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 ‘뉴딜’과 ‘감세 정책’도 추진할 여지가 줄어든다.
트럼프로서도 부담이 큰 달러 강세를 용인해주려면 확실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가장 많이 받아야 할 국가는 엔저가 되면 아베노믹스를 살릴 수 있는 일본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미국 방문에 이어 불과 3개월 만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풀어놓은 선물보따리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는 위안화와 원화가 절하되면 부담이 있다. 트럼프가 달러 강세를 용인해준 대가로 치러야 할 선물보따리가 일본보다 작아도 된다. 하지만 환율조작에 걸려 위안화와 원화가 절상되면 그 부담은 절하 때보다 훨씬 크다. 환율조작에 걸리지 않도록 치러야 할 대가는 분명히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환율조작을 언급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안도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지정 요건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가 중국보다 더 불리하다. 작년 10월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은 한 가지 조건(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만 걸렸으나 우리는 두 가지 요건(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과 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자를 중심으로 ‘환율조작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고 무작정 넋 놓고 올해 4월 환율보고서를 기다리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미국 무역흑자와 과다한 경상흑자가 줄어들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를 해놔야 한다. ‘트럼프식 환율 게임’에 대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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