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牛)울하네'…261억 구제역연구소 짓고도 개발 못한 '국산 백신'

입력 2017-02-13 18:11   수정 2017-02-14 05:01

제역할 못한 구제역백신연구센터

2015년 김천혁신도시에 건립
실험실 인증절차 등 미적
연구인력도 9명 불과
국산백신 개발 계속 연기

모자라는 A형 바이러스 백신
영국에 요청한 채 '발만 동동'



[ 오형주 기자 ] 사상 처음 국내에서 O형과 A형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구제역이지만 정부는 ‘백신 긴급 수입’ 외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지금까지 수백억원을 들인 국산 백신 개발마저 진전 없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무원들이 나랏돈 수백억원을 허투루 쓰는 바람에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국산 백신이 나올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 백신 연구 6년째 ‘허송세월’

정부가 국산 백신 개발에 나선 것은 6년 전이다. 2011년 3월2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방안’에서 구제역백신연구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2010년 발생한 사상 최악의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등 348만여마리를 살처분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 재정 261억원을 들인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2015년 경북 김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들어섰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제역 백신 연구에는 큰 진전이 없다.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한동안 실험장비 설치 및 실험실 인증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연구에 손을 놓고 있었다. 동물 임상실험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생물안전등급 인증도 작년 3월에 겨우 받았다. 예산과 인력 확보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센터 인력은 연구직을 포함해 모두 9명에 불과하다. 당초 40명의 연구인력이 배치될 계획이었다.

작년 말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으로 가축질병 대응이 이슈가 되면서 정부는 부랴부랴 올해 센터의 백신 연구개발(R&D) 예산을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린 40억원으로 책정했다. 내년까지였던 국산 백신 원천기술 개발 시한도 올 연말로 앞당겼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이르면 2020년에는 민간에 기술을 이전해 국산 백신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까지 백신 생산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인 데다 졸속개발마저 우려된다는 얘기다. 채찬희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센터를 지어만 놓고 연구비와 인력 등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아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며 “적은 인력과 예산을 갖고 목표만 무리하게 앞당기면 부실한 백신을 만들어 자칫 농가 불신만 키울 수 있다”고 걱정했다.

A형 백신 없어 무방비 상태

수백억원을 쏟아부은 구제역백신연구센터가 제 역할을 못 하는 동안 정부는 백신을 구하기 위해 외국 제약회사 반응만 살피는 처지로 전락했다. 지난 8일 경기 연천 젖소농가에서 7년 만에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국내에서 O형과 A형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한 건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소 283만마리를 대상으로 백신 일제 접종에 들어갔지만 A형 바이러스에 대비할 수 있는 O+A형 백신 보유량은 190만마리분에 불과하다. 사육 두수가 1000만마리가 넘는 돼지에 접종할 A형 백신은 아예 없다.

농식품부는 13일 O+A형 백신 160만마리분을 이달 말까지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제조업체인 영국 메리얼사로부터 수입 가능 여부에 대한 확답조차 받지 못했다. 백신이 계획대로 수입되더라도 접종 기간과 항체 형성 기간 등을 감안하면 거의 한 달가량 걸린다. 그동안은 A형 구제역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셈이다.

‘물백신’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O+A형 백신으로 연천에서 발생한 A형 바이러스 대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항체형성률이 높은 농장에서도 구제역이 속출하면서 백신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다. 이날 O형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보은 마로면 한우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법정기준치(80%)를 웃도는 81%에 달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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