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반체제 작가 반디 소설집 '고발' 나왔다

입력 2017-02-14 17:16   수정 2017-02-15 05:46

세계 20개국 판권 수출돼 호평
데버러 스미스 영국 번역 내달 출간



[ 양병훈 기자 ]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째나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중략)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북한에서 비밀리에 체제 비판 소설을 써온 작가 ‘반디’(필명)의 단편소설집 《고발》(다산책방)이 나왔다. 조갑제닷컴이 2014년 출간했으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책이다. 이 책은 반디가 탈북한 사촌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원고를 북한 밖으로 반출해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에서 나온 최초의 반체제 소설이다.

반디의 원고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북한인권운동 단체 행복한통일로의 도희윤 대표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탈북민은 《고발》을 ‘북한 인권 교과서’라고 표현했다”며 “전체주의 사회가 주민에게 가하는 억압을 실감나게 그린 작품들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반디에 대해서는 “1950년생의 남성 작가로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록작 ‘지척만리’는 노모가 위급하다는 전보를 세 차례나 받지만 여행증이 발급되지 않아 임종을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한 광부의 얘기다. 광부는 몰래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당국에 적발돼 고초를 치른다. ‘유령의 도시’에는 창밖으로 김일성과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기가 나온다.

2014년판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있습네다’ 같은 북한말을 원문 그대로 되살렸다. 일부 지명과 인명은 작가의 안전을 고려해 바꿨다. ‘삐여지다’(일정한 한계나 범위를 벗어나다), ‘호함지다’(탐스럽다) 등 낯선 표현이 수시로 나온다.

《고발》은 해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일본 포르투갈에서 이미 번역·출간됐고 캐나다에서는 이달, 영국과 미국에선 다음달 출간될 예정이다. 세계 20개국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채식주의자》로 소설가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했다. 영어판은 영국의 작가단체 ‘펜(PEN)’에서 지난해 하반기 번역상을 받았다. 다음달에는 《고발》을 출간했거나 할 예정인 세계 20개국 출판사 관계자가 모여 북한의 반체제 문학에 대해 논하는 국제콘퍼런스가 열린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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