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라라랜드' 관객 325만명 찾아
멜 깁슨 연출 '핵소…', 브래드 피트 제작 '문라이트' 눈길
[ 유재혁 기자 ] 다섯 살의 인도 소년 사루가 기차에서 놀다가 수천㎞ 떨어진 캘커타로 실려간다. 낯선 도시에서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갈 위기를 피해 고아 위탁소로 들어간 사루는 호주의 한 가정에 입양된다.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사루는 25년 만에 구글어스를 통해 뿌리 찾기에 나선다. 사루의 험난한 역경이 막을 내릴 즈음 관객의 눈에는 촉촉한 이슬이 맺힌다. 생모를 찾으려는 사루의 간절함은 관객에게 자신의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친어머니를 찾는다 해도 양부모의 사랑은 퇴색되지 않고 더 빛날 수 있다는 교훈도 준다. 2012년 사루 브리얼리라는 청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라이언’이다.
오는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86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을 앞두고 작품상 후보작이 국내에서 줄줄이 상영된다. 9편의 후보작 중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가스 데이비스 감독의 영화 ‘라이언’을 비롯한 6편을 이달 만날 수 있다. 라이언은 이달 초 개봉해 호평을 얻고 있다. 대부분 후보작은 재치있는 구성과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치를 입증한다. 배우 멜 깁슨과 덴절 워싱턴이 연출한 2편과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이 제작한 영화 2편도 작품상 수상 경쟁에 뛰어들었다.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컨택트’(드니 빌뇌브 감독·상영 중)는 지구에 온 외계인과의 만남을 소재로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다. 각국에 12개의 우주 비행체, 셸이 나타나 18시간마다 문이 열리고 의문의 신호를 보낸다. 충격에 빠진 각국 사람들은 신호를 해석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인간 사회는 소통 부재로 혼란이 심해진다. 미국 정부는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애덤스 분)에게 해석 임무를 맡긴다. 그는 숱한 좌절 끝에 언어를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며 해결의 실마리를 푼다. 진정한 마음이야말로 소통의 도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멜 깁슨이 연출한 ‘핵소 고지’(22일 개봉)는 6개 부문 후보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한 청년(앤드루 가필드 분)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무기 없이 75명을 구한 실화를 담아냈다. 자원입대한 청년은 상관과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지만 의무병으로 참전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는 처절한 전장과 청년의 신념을 대비시킨다. 폭탄으로 아랫도리가 날아간 병사들의 시신을 구더기와 쥐들이 파먹는 현장에서 청년은 목숨을 걸고 부상당한 전우들을 혼자 구출한다. 편견을 질타하는 영화다. 집총 거부는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며 강인한 신념은 강인한 용기와도 상통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문라이트’(베리 젠킨스 감독·22일 개봉)와 맷 데이먼이 제작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케네스 로너건 감독·15일 개봉)는 지난달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문라이트’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담아냈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남자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라라랜드’(데이미언 셔젤 감독)는 유력한 작품상 수상 후보로 떠올랐다.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7관왕, 영국 아카데미 5관왕을 휩쓸었다. 예술가 지망생들의 꿈과 사랑을 재치있게 그린 이 작품은 지난달 국내 개봉해 14일 현재 325만명을 모아 흥행에도 성공했다.
빚더미에 몰린 형제의 강도 행각을 그린 ‘로스트 인 더스트’는 지난해 개봉했고, 덴절 워싱턴이 연출한 ‘펜스’와 ‘히든 피겨스’(시어도어 멜피 감독) 등은 3월 이후 선보일 전망이다. ‘펜스’는 야구선수가 쓰레기 수거인으로 몰락한 뒤 가족 간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을 포착했고,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미국 우주개발에 참여한 흑인 여성 영웅들을 그려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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