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 "AI 예측 어렵다고? 중국만 보면 안다"

입력 2017-02-15 14:57   수정 2017-03-17 08:39

조류인플루엔자 전문가 송창선 건대 교수 인터뷰
2013년 기점으로 AI 유형 달라져… '상시화'가 문제
"살처분은 조기시행해야 유의미, 백신개발 병행 필요"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다”라고 말을 꺼내자 송창선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사진)는 대뜸 “2014년부터 매년 오고 있다. 4년 연속이다”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이 AI의 강도 못지않게 주목하는 것은 빈도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2~3년 간격으로 발생하던 AI가 상시화된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송 교수는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주최한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과 과학적 해법’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맡았다.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건국대 수의학관 연구실에서 송 교수를 만났다. 그의 AI 진단과 해법은 명쾌했다.

◆ "중국의 오늘은 한국의 내일"

“제발 중국을 봅시다. 중국이 어떤 백신을 쓰는지 확인하면 국내에 어떤 유형의 AI가 유행할지 보여요. 종류가 많지도 않아요. 고병원성 세 가지(H5N1형, H5N8형, H5N6형)와 인체에 감염되며 치명률이 높은 저병원성 한 가지(H7N9형), 이렇게 네 유형만 대비하면 됩니다.”

실제로 송 교수는 지난해 중국에서 유행한 H5N6형이 국내에 유입될 것을 예측했다. “바이러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AI에 관한 한 ‘중국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입니다.” 그의 말대로 중국은 AI의 원산지다. 한국은 물론이고 멀리 유럽과 북미에서 유행한 AI 역시 중국에서 발생해 퍼져나갔다.


AI 바이러스 종류를 표기할 때 쓰는 ‘H’는 헤마클로티닌, ‘N’은 뉴라미니다아제의 약자다. 자연계에는 H 단백질이 16개, N 단백질이 9개 존재하며 이들을 조합하면 이론적으로 144개 유형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 유행하는 H5N6형은 H5와 N6이 결합한 형태로 보면 된다.

국내에서 초기 4차례 유행한 AI는 모두 H5N1형이었다. 그러다 2013년을 기점으로 H5N8형과 H5N6형이 나타났다. 간단히 설명하면 주요 숙주가 다르다. H5N1형은 닭, H5N8형이나 H5N6형은 오리가 숙주다. 이 차이는 크다. 철새인 오리과 물새를 통해 AI의 장거리 전파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 철새가 유럽·북미까지 '대륙간 전파'

송 교수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이 작년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이 내용이었다. 논문은 H5N8형의 세계적 확산이 철새 때문임을 입증했다.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철새와, 알래스카를 경유해 북미로 가는 철새가 두 갈래 AI 운반책이 됐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랑 같다고 보면 됩니다. 철새가 대량 감염되기 시작했어요. ‘대륙간 전파’로 양상 자체가 달라진 겁니다. 근래 유행하는 H5N8형과 H5N6형은 오리에서 나타났죠. 그런데 철새에 오리류가 많거든요. 주로 닭에서 나와 철새 감염 가능성이 낮았던 H5N1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철새가 날아오는 한 AI가 계속 전파된다는 뜻. ‘상시화’ 국면으로의 전환이다. 온갖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집중된 중국과 인접한 한국은 특히 그렇다. 한데 살처분은 사전예방책이 아닌 사후방지책일 뿐이다.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 백신 개발 회피만 해서 되겠나

송 교수는 살처분이 유일한 대책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쪽에 서 있다. “왜 중국에서 백신을 쓰는지 고민해보자.” 그의 말이다. “살처분으로만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나”라고도 했다. 중국 사례에 비추어 우리도 백신을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하자는 제안이다.

국내 학계와 정부는 백신 개발에 신중한 편이다. 유전자 변이가능성을 근거로 든다. 백신을 맞힐 경우, 내성을 지닌 항체가 생기는 변이의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송 교수는 백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위험성을 우려하기보다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변이는 소(小)변이와 대(大)변이로 나뉘어요. H5N1형과 H3N2형에 동시 감염됐다고 쳐요. 내부 유전자가 섞여서 H5N2형 같은 조합이 나옵니다. 대변이죠. AI는 이런 대변이가 많아요. 조류가 백신에 의해 변이된다면 소변이일 텐데, 그렇다면 AI의 변이는 여러 유형의 인플루엔자 동시 감염 탓 아니냐는 거죠. 백신 때문이 아니라.”

이어 그는 “백신은 위기상황 대비 차원에서도 준비해야 한다. 지금 구제역도 백신을 프랑스에서 수입해 쓰는데 잘 안 맞는 ‘물백신’이 됐다”면서 “무조건 AI 백신을 쓰자는 게 아니다. 사용 여부와 별개로 개발은 해놓아야 긴급사태를 맞았을 때 선택권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 소독은 '마법의 상자'가 아니다

인터뷰 내내 송 교수는 답답해했다. 그가 보기에 AI 대처는 불확실성의 영역이 아니다. 첫째, 중국 상황을 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둘째, 국내 최초 발생 후 10년이 훌쩍 넘도록 반복됐다. 셋째, 그럼에도 살처분 타이밍이 늦었고 소독장치 역시 허술했다. 한 마디로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처분은 규모가 크면 안 돼요. 300만 마리 선에서 끊어야 확산을 막는 실질적 효과가 있습니다. 수천만 마리씩 살처분만 하는 게 ‘대책’일 수 있나요? 게다가 AI는 이미 상시화됐죠. 지금 살처분해 AI 잡는다고 합시다. 1년도 안 지나서 또 와요. 그 몇 개월간의 ‘AI 청정지역’ 유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송 교수팀이 한 공중파 방송사와 함께 실험한 결과 전국 곳곳에 설치된 소독장치도 효과가 거의 없었다. “형식적입니다. 차가 소독장치 통과하기만 하면 바이러스가 다 죽나요. 그러면 그건 마법상자죠. 해결책은 간단해요. 깨끗이 세차부터 한 뒤에 소독하는 겁니다. 방역 인프라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합니다.”

◆ "판데믹·인체감염 언급할 단계 아냐"

전문가들 사이에선 판데믹(전염병 대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앞서 철새를 매개로 한 AI의 대륙간 전파경로를 밝힌 그지만 “아직 판데믹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AI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 백신 사용 등을 통한 예방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송 교수는 ‘오버’를 경계하는 성격인 듯했다. 인체 감염가능성을 묻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AI 확산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 가금류의 공장식 밀집사육에 대해서도 “그런다고 해서 특별히 면역력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직접적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꼬장꼬장하게 짚어냈다.

“종간(種間) 전염과 변이가능성을 많이들 걱정해요. 실제 사람 감염 사례도 있죠. 하지만 인체 감염이 되려면 바이러스가 사람의 상부 호흡기에 들러붙고, 증식도 돼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요건이 동시에 바뀌긴 어려워서 인체 감염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봐요. 밀집사육 문제도 일단 감염되면 파괴력이 크니 지양하자는 것이지, 그 자체로 면역력이 저하된다고 보기는 어렵죠.”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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