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암살위기 넘긴 김정남, 김정은에 서신
"응징명령 취소해 달라…도망갈 길은 자살뿐"
"김정남 망명신청 없었다"…태영호 등 경호 강화
[ 김채연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는 5년 전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남은 한 차례 암살 위기를 넘긴 뒤 김정은에게 “가족을 살려달라”는 편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직후인 2012년에 한 번 있었고, 이후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였다”며 “김정남은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이 원장은 다만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는 ‘김철’이라는 이름의 북한 여권을 가진 북한인이 사망했다는 것으로, 김정남을 특정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2012년 4월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달라’는 서신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서신에서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응징명령을 취소하기 바란다. 우리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도망갈 길은 자살뿐임을 잘 알고 있다”고 애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여행객으로 위장한 두 명의 여성이 김정남의 뒤편으로 다가갔고, 한 명의 여성이 김정남 얼굴에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렸다.
김정남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곧바로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인근 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숨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15일 7시간가량 김정남 시신을 부검했다. 경찰은 부검이 끝남에 따라 결과 발표와 처리 방침을 정하는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용의자 한 명은 공항 폐쇄회로TV(CCTV) 영상에 모습이 담겼다. 해당 여성은 단발머리에 흰색 긴소매 티셔츠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현지에선 용의자들이 인근 싱가포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도피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원장은 김정남의 한국 망명 시도 여부에 대해서는 “(이전 정부나 현 정부 시절에도) 없었다”며 일부에서 제기한 망명 타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어 “(북한의) 정찰총국 등 정보당국이 지속적으로 암살 기회를 엿보며 준비하고 있었고 결국 오랜 노력의 결과로 이번 암살이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암살 타이밍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김정남이 자신의 처신에 위협이 된다는 계산적 행동보다는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북한 고위층의 추가 암살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이런 일(요인 암살)이 계속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북한 내부에 충격을 계속 주기 위해선 일어날 것”이라며 “일반 인민들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이 일로 인해 북한 내부 엘리트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의 첫째 부인과 아들은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으며, 둘째 부인 이혜경 씨와 아들 한솔은 마카오에서 중국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특히 이번 암살로 인해 국내에 거주 중인 북한 인사들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이 불거진 뒤 김정남에 대한 밀착 경호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 김정철은 북한 보위부 소속 경호원들이 밀착감시하고 있다. 이복누나 김설송은 구금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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