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취임'친화력 최고'
사우디 출신…한국 이름 '오수만'
홍보 사진도 정장보다 한복 선호
체육대회 때 직원들과 기마전
지난해 영업이익률 업계 최고
정제마진 높고 생산설비 효율화
영업益 107% 늘어 1조7000억
'사이클 산업' 한계 넘을지 주목
[ 주용석 기자 ] 지난해 12월9일 에쓰오일 임직원의 이목이 서울 본사(마포구 공덕동)에서 열린 회사 경영 설명회에 쏠렸다. 1976년 창사 이래 첫 전 직원 대상 경영 설명회였다. 이전까지 경영 설명회는 임원들만 참석했다. 직원들은 회사의 현재 상황과 미래 비전을 한 다리 건너 들어야 했다. 오스만 알 감디 에쓰오일 사장은 이런 관행을 바꿨다. 본사 직원뿐 아니라 울산 공장, 전국 판매 지사, 해외 지사 소속 직원들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경영 설명회를 들었다.
알 감디 사장은 이 자리에서 “직원들이야말로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며 “직원들과 함께 회사 경영 정보를 공유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회사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향후 비전은 어떤지 전 직원이 공유하게 돼 의미가 크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알 감디 사장은 소통을 통한 공감 경영을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며 “이번에 경영 설명회를 전 직원에게 공개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알 감디 사장은 지난해 9월 에쓰오일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했다. 직전에는 에쓰오일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한국법인인 아람코아시아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냈다. 아람코의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총괄했다.
알 감디 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사우디 킹파드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아람코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생산, 엔지니어링, 정비 프로젝트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아람코가 미국 엑슨모빌, 중국 시노펙과 합작으로 중국에 세운 푸젠정유석유화학에서 프로젝트매니저, 기술기획부문 총괄 담당을 거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쌓았다. 2015년 9월부터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알 감디 사장은 한국에 강한 애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 사장에 취임하자마자 한국 이름부터 지었다. 명함에도 한국 이름을 함께 새겼다. 그의 한국 이름은 ‘오수만(吳需挽)’이다. 본명인 ‘오스만’과 비슷하게 한국 이름을 정했다. 한자로는 쓰일 수(需), 당길 만(挽)을 썼다. ‘탁월한 지혜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번영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란 뜻이다.
자신의 대외 홍보 사진으로 양복 정장 차림보다 한복 차림을 선호할 때가 많다. 아직까지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로 의사소통하지만 그는 취임 당시 “한국과 사우디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직원들에게 다짐했다.
직원들과는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지난달엔 신입사원들과 함께 서울 우면산에 올랐다. 본사 체육대회 때는 직원을 목말 태우고 기마전에 나서기도 했다. 그 덕분에 직원들로부터 “친화력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
경영자로서도 알 감디 사장의 데뷔는 일단 성공적이다. 에쓰오일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매출 16조3218억원, 영업이익 1조6929억원을 올렸다. 저유가 영향으로 매출은 전년보다 8.8%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07.1% 늘어나며 이전 최고 기록인 2011년 1조6337억원을 뛰어넘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10.4%로 국내 정유 4사 중 가장 높았다. 에쓰오일이 2004년 기록한 역대 최고 영업이익률 11.5%에 버금가는 수치다.
정제마진(원유를 정제해 얻는 이익)이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한 데다 석유화학, 윤활기유(윤활유 원료) 등 비(非)정유 부문이 호황을 누린 덕분이다. 적극적인 투자로 생산설비를 효율화한 영향도 컸다. 에쓰오일은 “합성섬유의 기초원료인 파라자일렌(PX)과 고품질 윤활기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2015년부터 울산공장 시설 개선 사업으로 생산효율과 수익성을 높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알 감디 사장도 “에쓰오일 공장의 운영 수준이 굉장히 높다”며 “우수한 운영 능력은 에쓰오일의 성공 DNA”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알 감디 사장은 호황기에 CEO에 취임했다는 점에서 운이 따른 측면도 있다. 앞으로 알 감디 사장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좋은 실적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유·화학업종은 흔히 ‘사이클 산업’으로 불린다.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업이란 의미다. 한두 해 실적이 좋았다고 해서 그다음해 실적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유가만 바라보는 천수답식 사업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사이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에쓰오일이 사활을 걸고 있는 사업이 잔사유 고도화·석유화학 복합시설 프로젝트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잔사유로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내년 4월 완공을 목표로 울산공장에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익 규모가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 감디 사장은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보수적 시나리오를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미래를) 분석했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앞으로 큰 이익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쓰오일이 잔사유를 분해해 생산할 예정인 석유화학 제품(산화 프로필렌)은 현재 상당량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생산업체도 한 곳뿐이다. 에쓰오일이 제품 공급을 시작하면 수입 대체 효과와 함께 내수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은 과거에도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투자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1991년 아람코가 대주주가 된 것을 계기로 국내 경쟁사보다 10년 이상 앞서 대규모 고도화 시설을 갖췄다. 저부가가치 제품인 벙커C유를 투입해 고부가가치 제품인 휘발유, 경유를 뽑아내는 시설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울산공장에 파라자일렌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알 감디 사장은 “2014년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많은 회사가 투자를 취소한 가운데 아람코가 에쓰오일의 이번 투자를 결정한 것은 에쓰오일이 경쟁사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회사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 감디 사장은 요즘 한 달에 서너 차례 울산공장과 신규 프로젝트 공사 현장을 점검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알 감디 사장의 리더십은 솔선수범형”이라고 평가했다.
최근엔 9400만원을 들여 에쓰오일 주식 1159주를 장내에서 매입했다. 에쓰오일은 CEO가 재임 중 자사 주식을 산 것은 알 감디 사장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알 감디 사장은 CEO로서 책임경영과 신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자사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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