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 달달 외우고 변호인 감정이입에 집중"

입력 2017-02-16 17:12  

영화 '재심'서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역 정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소재
사법권력에 상처받은 사람 포근히 안아주는 휴먼스토리



[ 유재혁 기자 ] 데뷔 17년차 배우 정우(36)는 10여년의 무명 시절을 견뎌내고 2013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란 별명의 의대생 역으로 스타가 됐다. 2015년 영화 ‘쎄시봉’과 ‘히말라야’에서 순수남 배역으로 인상을 남긴 그는 지난 15일 개봉한 ‘재심’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청년 현우(강하늘 분)에게 새 삶을 찾아주는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준영 역을 연기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인권을 유린하는 사법체계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고발한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정우를 만났다.

“무거운 실화 소재인데 따뜻하게 나왔습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런 사건이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어요. 방송에서 실제 피해자의 어머니가 나온 장면을 보니까 울컥하더군요. 이 영화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다른 누군가가 알아준다면 위안이 되니까요.”

현우의 실제 주인공인 피해자 최모씨는 2000년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최씨는 이듬해 2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간 옥살이를 하다 2010년 출소한 뒤 지난해 1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극중 준영은 처음에는 유명해지려고 변호를 맡지만, 현우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정의감 넘치는 인물로 변한다. 영화는 현우의 무죄 증거를 찾아내는 논리성보다는 두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한마디로 상처받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안아주는 이야기예요. 사람의 상처를 감싸주고 이해하고 믿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죠.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이기 때문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사람은 단박에 상대를 믿지 않습니다. 현우는 변호사에 대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다 조금씩 믿게 됩니다. 저는 기존의 딱딱한 변호사 이미지를 벗어나 유머러스한 면모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는 연기를 위해 실제 변호사를 만났지만 그의 습관이나 말투를 배우지는 않았다. 대신 그가 느낀 감정을 새롭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법정에서 쓰는 전문용어는 수십 번 되뇌며 연습했다. 정우는 “널 살인범으로 만든 건 우리”라며 오열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한 현우의 ‘전 재산’(십몇만원)을 받고 “이제부터 내가 니 변호사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는 “이런 장면을 오글거리지 않게 연기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2002년 연예계에 데뷔한 정우는 영화 ‘품행제로’,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등 십여 편에 출연했지만 흥행작이 없었다. 작품이 좀 알려졌어도 그의 배역이 작아 대중의 뇌리에는 기억되지 않았다. “열심히 하던데, 너는 왜 안 됐지”란 선배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오랜 무명 세월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정우는 “나를 믿어준 가족과 친구들의 힘”이라며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잘 준비해 기다리면 기회가 한 번은 온다”는 황정민의 말이 큰 격려가 됐다고 한다.

정우는 스타덤에 오른 뒤 세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가장이 됐다. 2013년 동료 배우 김유미와 결혼한 그는 지난해 12월 딸을 얻었다. 그는 “결혼을 하니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며 “이전보다 가족 위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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