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근혜 대통령 측 죽이고 다른 쪽과 얘기하자"

입력 2017-02-16 17:45   수정 2017-02-17 07:07

한경 단독 입수 '고영태 녹음파일' 분석해보니

고영태 측근 "박근혜 레임덕 올 텐데 기름을 확 붓는거다"

K재단 등 장악 후 별도 법인으로 수익 내려다가
언론 인터뷰 들어오자 위기감에 '탈출 전략' 시도
"최씨, 문체부 인사 개입 드러나면 친박은 와해될 것"

고영태 녹음파일은
2015년 초~2016년 7월 측근과 통화한 2391개 파일

헌재 "24일 변론 종결하겠다"



[ 고윤상 / 구은서 기자 ]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와 그의 측근들이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해 “(정치적으로) 박근혜(대통령)를 죽이자”는 등의 모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고영태 녹음파일’에 따르면 고씨 비서 역할을 한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는 지난해 7월4일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대표는 통화에서 “소장님(최순실)은 박근혜가 ‘지는 해’이기 때문에 끝났다고 봐요. 근데 (박 대통령한테) 받을 게 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없습니다. 소장님 통해서, 박근혜 통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예요. 그거(박 대통령)를 죽이는 거로 해가지고 다른 쪽하고 이야기하는 게 더 크다고 전 봐요”라고 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고씨와 측근들이 비박(비박근혜) 세력과 결탁해 ‘국정농단 게이트’를 만들고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대가로 자신들의 사익을 보장받으려는 계획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고씨와 측근들은 추후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했다. 김 전 대표는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을 이사장으로 앉혀 놓고 나중에 정치적인 색깔이 있는 사람하고 거래를 해서 자리를 하나씩 마련해 주면 된다”고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오는 24일 마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 14차 공개변론에서 “(남은) 다섯 명의 증인신문을 마친 다음 24일에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소장 권한대행 퇴임일(3월13일) 이전인 다음달 10일께 탄핵심판 선고가 유력해졌다.

‘고영태 녹음파일’에 따르면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와 측근들이 ‘박근혜 죽이기’를 본격 모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초 무렵이다. 고씨와 측근들이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K를 사실상 장악하고 자신들이 최순실 씨 몰래 세운 별도 법인인 예상을 통해 수익을 내려던 차였다.

▶본지 2월15일자 A1면 참조

녹음파일에는 한 언론에서 최씨와 고씨의 관계를 파고들기 시작하자 이들이 전전긍긍해 하는 부분도 나온다. 자신들이 K스포츠재단을 중심으로 만들어둔 수익 구조가 들통날까 봐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친박 와해시키고 비박서 대가 챙기자”

고씨의 비서 역할을 한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는 지난해 7월4일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본격 논의했다.

김 전 대표는 “언론에서 (최씨의 비선실세 의혹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자고 했지만 거부했다”고 했다. 이에 류 전 부장은 “인터뷰를 하려면 (친박에 타격을 줘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반기문 쪽 사람과 해야지”라며 “(정 하고 싶다면) 대가로 20억원 정도를 달라고 하라”고 답했다. 이들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인식하고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고는 박 대통령을 난관에 빠뜨리고 그 대가로 다른 쪽(비박)과 결탁하자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김 전 대표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차은택 감독을 타깃으로(노리고)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졌다는데 이명박 때든 노무현 때든 다 그렇게 해서 끝났다”며 “만일 민간인(최순실 씨 등)이 문체부에 개입하고 있다는 게 정황상 드러난다고 하면 국정감사나 청문회를 해서 최순실을 부를 것이고 친박에 있는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와해될 것”이라고 했다.

또 “박근혜는 레임덕이 와서 죽을 텐데 여기다가 기름을 확 붓는 거”라며 “영태 형이나 장관이나 차 감독이나 이런 거로 (기름을) 부어서 완전히 친박연대를 죽여 버리고 다음 대권 주자가 비박에서 되면 거기서 (자리를) 받는다는 거지”라고 말했다.

◆국회 측 “우리 쪽에 불리한 것 없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 대리인단 관계자는 “탄핵 사태 발단이 된 주요 인물의 입을 통해 대통령이 이들의 농간에 연루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검찰과 특검이 고씨와 측근들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의 계획이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대리인단은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준비서면을 17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예정이다.

반면 국회 측은 고영태 녹음파일 속 내용들이 오히려 국회 측에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영태의 녹취록을 보면 국정농단의 과정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며 “그 과정에 대통령 측이 꼬투리를 잡을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 쪽에 불리하지 않다”고 했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도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 내용을 까면 깔수록 최씨가 얼마나 국정에 많이 개입했고 최씨가 박 대통령과 어떤 관계였는지 더 밝혀지는 내용”이라고 증언했다.

■ '고영태 녹음파일' 모아둔 김수현은 누구

정치권 기웃하다 高씨와 함께 일해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는 2015년 초부터 2016년 7월까지 이른바 ‘고영태 녹음파일’ 2391개를 모았다. 주로 더블루K 고영태 전 이사와 류상영 전 부장, K스포츠재단 노승일 전 부장, 박헌영 전 과장 등과 통화하거나 대화한 내용이다.

김 전 대표는 휴대폰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해주는 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고 전 이사와의 통화 녹음파일이 252개, 류 전 부장과의 통화 녹음파일은 247개에 달했다. 가족(200여건) 친구·택배기사(500여건) 등과의 통화나 전화영어(175건) 등 사적인 녹음파일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고영태 녹음파일은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류 전 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고 전 이사 물건과 (주)예상의 자료를 검찰에 임의 제출했는데 이 자료 속에서 녹음파일이 나왔다.

김 전 대표는 2005년 안양과학전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인터넷 쇼핑몰 등을 운영하다가 2007년까지 건축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 때 한 후보 캠프에서 같이 있었던 이현정 씨 소개로 2014년 고 전 이사를 만나 함께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윤상/구은서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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