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IoT 등서 협력 여지 커
규제와 표준 관련 상호협력 절실"
이우광 < 한국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
한·일 경제관계가 축소 국면으로 들어선 지 오래다. 대일(對日) 수출은 2011년 396억달러에서 2016년에는 39% 감소한 243억달러로 줄었다. 수입도 31% 줄어든 474억달러다. 일본 수입에서 차지하는 한국 수출품의 점유율이 4.7%에서 4.1%로 떨어진 것을 봐도 일본 경제 침체로 인한 대일수출 감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기업의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도 2012년 약 40억달러에서 2015년에는 16억3000만달러로 줄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급증한 가운데 한국에 대한 투자 감소는 이례적이다. 이 시기에 대중국 투자도 줄기는 했으나 한국만큼은 아니다. 한·일 양국 간 정치관계 악화가 경제관계 악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밀하게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치관계 악화와 경제관계 악화의 시기가 정확하게 겹치는 것을 보면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일본 기업의 직접투자 감소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양국 간 정치관계가 회복된다면 경제관계도 복원될까. 결론적으로 정치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경제관계 복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양국 모두 경제구조나 경제환경이 너무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양국 기업 모두 공급체인이 상당히 변했고 추구하는 경영전략도 달라졌다. 지금 일본 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이다.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현명하게 대처해 수요 축소, 인력감소 문제를 생산성 향상으로 보완하겠다는 경영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비용 절감으로 매출과 수익을 늘려오던 지금까지의 전략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다. 기존의 비용 절감 효과에 기대어 온 한국 기업과의 거래는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고령화나 4차 산업혁명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기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향후 주력 산업이 될 고령화산업이나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해 윈윈하는 방안은 없을까. 고령화는 일본을 선두로 한국·중국·동남아가 그 뒤에 서 있다. 고령화산업의 대표 격인 의료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앞으로 그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안타깝게도 의료기기산업은 한국과 일본 모두 무역적자 산업이다. 양국의 강점을 상호 보완한다면 경쟁력을 제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고령화산업은 규제가 정부마다 달라 양국이 협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독일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분야 역시 제조업 대국인 일본·한국·중국 모두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하지만 이들 산업은 기술과 비용을 중시하던 기존 산업과는 그 특성이 전혀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격인 사물인터넷(IoT)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각 기기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표준이 같아야 한다. 그래야 자국 제품을 해외 시장에 팔 수 있다. 따라서 4차 산업 선진국들은 산업표준 확보 경쟁에 주력하고 있다. 고령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규제완화나 표준화에서 주도권을 쥔 국가가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한·일 양국은 새로운 경제관계 구축을 위해 규제·표준을 둘러싼 정부 및 단체들 간 협력이 불가피하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 신뢰 없이 규제를 일치시키거나 표준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양국 간 경제 협력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정체됐다는 우려가 심한 가운데 양국 간 윈윈할 수 있는 협력을 통해 고령화산업이나 IoT산업에서 생존을 넘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우광 < 한국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