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쌓아온 국가 브랜드 가치, 정치권이 너무 쉽게 무너뜨려
기업을 공적으로 때리는 정치, 해외로 기업들 내쫓는 짓
도요타·포드는 위기 때 오너 나서…기업총수 강제 퇴장 압력 안돼
[ 강현우 / 좌동욱 기자 ]
“정치인들은 대기업을 무슨 국가의 공적(公敵)처럼 몰아붙이고 있다. 기업들을 해외로 내쫓는 짓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은 물론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부회장 등 삼성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 주요 인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문제가 ‘기업 때리기’로 변질되고 있는 데 큰 우려를 나타냈다. 글로벌 기업의 총수를 인신 구속하고, 수갑과 포승줄에 묶어 공개 소환하는 특검에 불만도 쏟아냈다.
◆“정치가 국격 무너뜨려”
윤 전 부회장은 “국가 브랜드 향상에 기여한 것 없는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국격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한국의 글로벌 위상은 기업과 운동선수들이 공들여 쌓은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한 게 없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면서 그저 표(票)를 위해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한 전직 계열사 사장은 “수갑을 찬 채 특검에 소환되는 이 부회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되면서 삼성은 브랜드 가치를 100억달러(약 11조원) 정도는 까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기업 인터브랜드가 추산한 지난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 518억달러(약 60조원·세계 7위) 중 5분의 1 정도는 날아갔을 것이란 분석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전 삼성증권 사장)은 “한국 대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오너 주도 경영이었는데, 정치권이 그걸 무시하고 총수를 하루아침에 퇴장하라고 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는 자체 판단을 존중하되 사회 요구에 따른 변화는 천천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황 회장은 “도요타나 포드 등 해외 기업들은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오너 경영자가 다시 등장해 위기를 수습한다”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문제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때리면 해외로 나가”
총수 공백과 브랜드 가치 추락이라는 위기 국면에서 경쟁국의 삼성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전 삼성전자 사장)은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이 발생한 작년 11월 중국에서 만난 한 고위 관료가 ‘삼성전자는 곧 망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삼성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진 회장은 “삼성은 이미 세세한 경영은 전문경영인 책임하에 이뤄지지만 반도체 투자와 같은 큰 결정은 오너의 몫”이라며 “최근 성장 둔화를 타개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세계가 들여다보는 회사”라며 “가뜩이나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 보호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이 삼성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정치권이 대기업을 타깃으로 법인세를 올리고 상법을 개정할 때가 아니라 삼성 같은 기업이 신나게 일하게 해줄 때”라고 호소했다. 이어 “기업들이 국내 경영 환경이 어려워도 남아 있는 것은 국가 경제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기업 때리기가 지속되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등 기업에 대한 도덕 기준 높아”
삼성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기대 수준이 높은 만큼 그에 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황 회장은 “1등 기업인 삼성에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높다”며 삼성이 계열사별로 ‘윤리위원회’(가칭)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시민단체와 노동계, 존경받는 경영인 등 다양한 인물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국가사업 참여 등을 요청받으면 여기서 논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황 회장은 “최근 삼성을 비롯해 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삼성이 지향하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려면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더 변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현우/좌동욱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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