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윤상 기자 ] “한센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가 간 과거사 문제를 민간 차원의 협력을 통해 해결한 모범 사례입니다.”
한센인권변호단 단장을 맡고 있는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사진)는 14년간 쏟아온 ‘공익소송’의 열매를 거뒀다. 정부로부터 강제 낙태나 단종 수술을 당한 한센병 환자들을 대리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를 받아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15일 한센인 강모씨 등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 소속 의사들이 한센인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국가가 한센인 1인당 3000만~4000만원씩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박 변호사는 “한센인 문제는 전근대사회가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 중 하나”라며 “한센인 문제 해결과정을 잘 짚어보고 거울로 삼으면 위안부 같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가 한센인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일본 변호사들이 한센인 문제를 들고 대한변협에 찾아왔다. 한국은 관심도 없던 문제를 일본 변호사들이 해결하자고 나선 것에 박 변호사는 충격을 받았다. 양국 변호사들의 노력 덕에 2006년 한국 한센인 590명이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1인당 800만엔(약 8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1986년까지 소록도에서 한센인에게 강제 낙태와 강제 단종 수술을 했다. 박 변호사는 2006년 이에 대응하고자 한센인권변호단을 발족했다. 이후 정부가 보상에 나섰지만 한센인 1인당 월 15만원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변호단은 2011년부터 한센인 539명을 대리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소록도와 전국의 한센인 집단거주지역 등을 수십 차례 다니며 무료 변론에 나선 결과가 14년 만에 나온 것이다.
‘한센병(나병)’은 1871년 노르웨이 의사 한센이 나균을 발견하고 치료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가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 중 하나였다. 한센병 환자는 몸이 괴사하는 등 보기 좋지 않은 모습 탓에 과거에는 ‘문둥병’이라며 사람 취급을 못 받을 정도였다. 가족 중 한 명이 한센병에 걸리면 그 가족 전체가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학살당하기도 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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