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제재 정당성' 따질 듯…삼성·공정위 "억측"
외신 "퀄컴 기사회생 기회"…전문가 "결국 일 터져"
엘리엇도 이재용 부회장 구속 빌미 소송 가능성
[ 황정수 기자 ] 특검의 삼성 뇌물공여 혐의 수사가 엉뚱하게 미국 통신칩셋업체 퀄컴에 ‘기회’를 주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과정에 ‘삼성-공정위 커넥션’이란 의혹을 특검이 덧씌운 것을 이용해 퀄컴도 작년 12월 자사에 대한 공정위 제재를 ‘삼성 로비의 결과물’로 엮었다. 퀄컴은 “삼성 스캔들이 공정위의 제재 정당성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며 21일 공정위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외신들도 ‘퀄컴이 기사회생할 기회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외국 경쟁사의 삼성 공격은 특검이 삼성을 타깃으로 삼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 기소했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그룹과 ‘일전’을 치른 헤지펀드 엘리엇 같은 외국 투자자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퀄컴, “시정명령 중지해달라” 요구
공정위가 지난해 말 퀄컴에 1조300억원의 과징금 부과 제재 결정을 내린 후 퀄컴은 불복 소송을 검토해왔다. 공정위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기한은 ‘의결서를 받은 날부터 30일’이다. 퀄컴은 지난달 23일 공정위에서 의결서를 받았다. 22일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퀄컴은 이에 따라 기한을 하루 앞두고 공정위의 시정명령 중지 가처분소송을 냈다. 공정위는 작년 12월 과징금 1조300억원과 함께 퀄컴에 △경쟁 모뎀칩셋업체에도 특허 라이선스를 주고 △모뎀칩셋 공급을 볼모로 휴대폰사에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하지 말며 △휴대폰사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 시 부당한 계약조건 강요를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 이 시정명령이 시행되면 퀄컴은 휴대폰 가격의 5%를 특허수수료로 받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모델을 즉각 수정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정명령 중지 가처분소송은 3~4개월 정도 걸린다”며 “가처분 결과가 나올 때까진 퀄컴이 즉각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위반 주장도 나와
불복소송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가닥이 잡힌다. 첫 번째는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의 정당성이다. 공정위는 퀄컴의 독점력이 ‘특허 라이선스 정책’에서 시작한다고 보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퀄컴은 이에 대해 “이동통신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라며 “라이선스 정책이 경쟁을 제한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공정위 조사·심의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공방도 벌어질 수 있다. 공정위는 작년 7~12월 전원회의를 다섯 차례 열면서 퀄컴에 충분한 시간을 줬고 조사·심의 과정에서 반론권과 교차 심문권(퀄컴이 직접 이해관계자를 심문할 권리)을 보장했다며 절차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퀄컴은 “자료 접근권, 교차 심문권 등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1조300억원이란 과징금 산출 근거와 관련해서도 퀄컴은 “공정위가 퀄컴의 한국 로열티 매출을 과도하게 계산했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삼성 특검’ 때문에 쟁점 추가
이날 퀄컴의 법무담당 수석부사장이 ‘공정위의 제재는 삼성의 공정위 로비에 따른 결과물’이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소송의 쟁점은 하나 더 추가됐다. 공정위 제재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공방이 예상된다. 퀄컴은 특검의 ‘삼성 로비’ 프레임을 흉내내 공정위의 제재에 대해서도 “삼성이 뒤에서 퀄컴에 강력한 제재를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와 휴대폰을 동시에 생산하는 삼성이 퀄컴의 특허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정위를 움직여 퀄컴의 사업모델에 메스를 들이댔다는 논리다.
공정위와 삼성은 즉각 반박에 나섰지만, ‘삼성 특검’을 등에 업은 퀄컴의 주장은 소송 판도에 영향을 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삼성을 겨냥한 해외 경쟁사들과 외국 투자자들의 공세가 잇따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특검의 이 부회장 구속 기소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삼성에 적용해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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