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아이] "헐, 대박" 번역엔 Resign…일단 멈춘 'AI포비아'

입력 2017-02-22 14:32   수정 2017-02-23 00:34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AI에게 쉽고
인간에게 쉬운 일은 AI에게 어렵다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Resign’(기권). 1년여 전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 제4국에서 패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띄운 메시지다. 지난 21일 인간과 번역 대결을 벌인 AI를 보면서 그 장면을 떠올렸다.

이날 국제통역번역협회(IITA)와 세종대·세종사이버대 주최로 열린 ‘인간 대 기계의 번역 대결’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60점 만점에 인간은 평균 49점, AI는 13~28점의 점수를 받았다.

업계 최고 수준인 전문번역사 4명과 맞붙은 AI 대표는 구글, 네이버(파파고), 시스트란 번역기였다. 영어로 된 문학·비문학 지문을 한국어로, 한국어 문학·비문학 지문은 영어로 각각 번역하는 4개 문제가 출제됐다. 주어진 시간은 50분. 동일한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원문> “The moment that Steve Jobs introduced the iPhone turns out to have been a pivotal junction in the history of technology and the world.”

- 인간 전문번역사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개발한 시점은 기술발전의 역사와, 또한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음을 지금은 다들 인정한다.”
- AI 번역기① “그 순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소개했다 technology(기술)와 세계의 역사에 있어 온 중추적인 접합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AI 번역기②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한 순간 기술과 세계의 역사에서 중추적인 교차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AI 번역기③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도입한 순간은 기술과 세계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변별력 있는 지문을 준비한 출제진 의도대로 인간과 AI의 승패를 가른 것은 ‘한 획을 긋는’과 같은 비유적 표현, 즉 콘텍스트(문맥) 해석의 영역이었다. 심사를 맡은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AI는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 번역만 했다”고 평가했다.

알파고로 인해 AI의 위력을 실감한 사람들이 모종의 무기력과 공포감을 느끼던 참이다. 이번 대결로 다소나마 ‘AI 포비아(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알파고의 승리에 사람들은 외쳤다. “헐, 대박!” 자신에 대한 경악을 AI는 과연 어떻게 번역할까?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라는 문장을 띄엄띄엄 몇 차례 반복한다. 같은 문장이지만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객관적 상황을, 고립된 처지를, 때로는 추운 날씨를 묘사했다. AI가 이 미묘한 문맥을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 시간은 AI의 편이다. 이전의 수많은 AI 바둑 프로그램들은 인간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달랐다. ‘번역하는 알파고’ 역시 예상보다 빨리 나타날지도 모른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학과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고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되면 AI는 번역에서도 인간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AI를 왜 두려워하나. 인간이 잘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AI를 이겨서 안심된다고? AI의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 한숨이 나오지 않느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정반대 관점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컴퓨터에게 쉽고, 되레 인간에게 쉬운 일은 컴퓨터에게 어렵다. 이른바 ‘모라벡의 역설’이다. 어제의 번역 대결이 딱 그랬다. 빠르기는 AI가 인간을 압도했다. 문맥 파악은 인간이 앞섰지만 말이다. 거기서 AI포비아를 넘어선 인간(정확성)과 AI(속도)의 상호보완·공존 가능성을 엿보았다면 너무 낙관적인 걸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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