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서 아들로 유전되는 Y염색체 반복되는 염기 구성으로 식별
오류 확률 4조7000억분의 1
딸 김솔희는 아버지에게 받은 22쌍 상염색체 검사로 확인
[ 박근태 기자 ] 말레이시아 경찰이 암살당한 김정남 신원 확인을 위해 김정남 자녀의 DNA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얼굴에서 신경작용제 VX 성분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DNA 검사는 범행 현장 감식, 친자 확인, 군 유해 발굴 등에서 강력한 신원 확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근이나 혈액, 손발톱, 입 안 점막세포 등에 존재하는 DNA를 분석해 신원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중 모근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DNA 검사는 1984년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 영국 레스터대 교수가 개발했다. 오류가 생길 확률이 4조7000억분의 1에 불과해 친자 판결에 명확한 근거로 채택되고 있다. DNA 검사에서는 A가 B의 자식일 확률이 99.999%라는 결과가 나오는데, 이는 정확도가 80~90%에 불과한 거짓말 탐지기와 눈에 띄게 비교된다. 사람의 유전자는 23쌍으로 이뤄진 46개 염색체로 구성돼 있다.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반반씩 물려받은 것이다. 숨진 김정남 자녀의 DNA는 그만큼 김정남의 신원을 확실하게 증명해줄 강력한 근거다. 김정남은 본처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둘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김한솔·김솔희 남매를 두고 있다.
흔히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 ‘짧은염기반복(STR)’ 방식이다. DNA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가 되는 유전자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 유전자가 아닌 영역에서는 흔히 DNA를 구성하는 염기들이 AGTAGTAGT처럼 2~7개씩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이를 STR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AGT가 7번, 다른 사람은 10번 반복되는 식으로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STR은 개인 식별에 많이 사용된다. 사람 DNA는 약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통상 15~16개의 STR이 친자 식별에 쓰인다. STR로 친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아버지와 자식의 DNA에서 STR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X, Y염색체 가운데 Y염색체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대를 이어 유전된다. Y염색체에서 반복되는 STR을 확인하면 남자 조상이 같은 집안의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남과 아들 김한솔의 Y염색체를 살펴보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가 같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유전자 샘플을 외국에 제공할 경우 유전 질환 같은 주요 정보가 넘어갈 공산이 높아 북한당국이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딸 김솔희는 Y염색체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반반씩 물려받는 22쌍의 상염색체 검사를 하면 부녀 관계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모계혈통을 통해서도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DNA(mt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어머니가 다른 김정남과 김 위원장은 서로 다른 미토콘드리아DNA를 가지고 있다. 김정남 자녀 역시 아내들의 미토콘드리아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미국으로 망명한 이모 성혜랑만이 비교할 수 있는 샘플을 제공할 수 있다.
친자 분석을 하는 데도 게놈 분석을 활용할 수 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장(생명과학부 교수)은 “30억쌍 전체 염기서열을 다 해독해 비교하면 이 사람이 북한인인지는 물론 서로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의 여성 용의자들은 처음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오랫동안 신분 세탁을 한 북한 공작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모로 구별하기 어려운 사람도 게놈(유전체) 분석을 통해 국적을 알아낼 수 있다. 박 소장은 “DNA 샘플을 채취한 뒤 한국인의 유전자 지도인 표준게놈과 비교해 유전적 차이를 살펴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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