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시선] 중국 '5100억짜리 축구과외' 불안한 이유

입력 2017-02-27 11:39   수정 2017-02-27 21:29

중국 '축구굴기' 가속…한국은 '셀링리그' 심화
스타 모시는 '차이나 머니'…이적료만 5100억
스타 못 잡는 K리그…뜨고 나면 줄줄이 이적




최근 국내 축구팬들을 절망에 빠지게 만든 일이 있었다.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의 ‘디디에 드로그바 영입 해프닝’이다.

드로그바는 첼시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다. ‘드록신’으로 불릴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런 그가 K리그로 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 팬들은 술렁였다.

하지만 드로그바는 망설였다. 기다리던 제주는 확답이 늦어지자 결국 영입을 포기했다.

올해 40살인 드로그바는 2012년 EPL을 떠나 중국 슈퍼리그(CSL)에서 활약했고 지난해엔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뛰었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축구 변방을 찾아다니는 그가 K리그행을 머뭇거렸다는 사실에 팬들은 실망했다. “중국도 되는데 한국은 안 된다는 건가.”

드로그바 해프닝은 K리그의 대외적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중국이 용병으로 쓰던 선수를 한국은 쓸 수 없는 것이다.


반면 CSL는 자금력을 앞세워 드로그바 같은 왕년의 스타보단 젊은 스타들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엔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인 오스카와 헐크를 비롯해 벨기에 ‘황금세대’의 주축으로 꼽히는 악셀 비첼을 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이적시스템(TM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CSL 구단들이 외국 선수 영입에 지출한 이적료는 5100억원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 이은 5번째 규모다. 같은 기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구단들이 지출한 이적료의 4배다.

CSL 구단들이 이처럼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국가 주도의 축구 부흥작업인 ‘축구굴기’ 때문이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축구의 목표 세 가지를 표면화했다. 월드컵 진출과 월드컵 개최, 마지막은 월드컵 우승이다. 지금은 스타선수와 감독들을 자국리그로 끌어들여 축구를 배우는 단계로 볼 수 있다. 5100억짜리 ‘축구 과외’인 셈이다.

중국의 고액 과외는 한국 축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전망이다. 스타가 모이고 있는 CSL과 달리 K리그는 ‘성공하면 떠나는’ 리그가 돼가고 있다. 최근엔 중국으로 떠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K리그가 중국에 선수를 대는 ‘셀링리그’라는 말도 나온다. 김형일, 김승대, 윤빛가람, 장현수 등 CSL에서 뛰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은 10명 이상이다. 이들 대부분은 대표팀에서 뛰었던 경력이 있는 간판급 선수들이다.

한 축구 에이전트는 “전에는 중국리그가 비싼 돈을 받으며 말년을 보내는 곳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며 “중국 진출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는 선수도 있을 정도로 인식도 좋아졌고 투자가 늘어나면서 수준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형일은 중국 진출의 이유로 “세계적인 선수들과 부딪힐 수 있는 기회”를 꼽았을 정도다.

중국으로 떠나는 한국인 감독도 늘어나는 추세다. CSL 16개 구단 가운데 5개팀을 한국인 감독이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시즌 도중 FC 서울 지휘봉을 내려놓고 장쑤 쑤닝으로 옮긴 최용수 감독은 “명장들과 겨뤄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CSL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감독(광저우 헝다)을 포함해 스벤 예란 에릭손(선전 FC),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상하이 상강) 등 세계적인 감독들이 많다.


경기력은 이미 K리그를 압도할 기세다.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에선 CSL 구단들이 K리그 구단을 상대로 전승을 거뒀다. 내달 1일 수원 삼성과 광저우의 대결도 광저우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CSL 최강팀인 광저우는 2013년과 2015년 이 대회를 우승해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CSL 구단의 한국 원정경기가 K리그보다 뜨거운 관심을 사고 있기도 한다.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상하이의 경기는 영하 10도 한파와 평일 경기라는 악조건에도 1만8700여명의 관중이 경기를 관람했다. 지난해 서울의 평균관중 1만8000명을 뛰어넘는 숫자다. 국제전이라는 상징성과 동시에 오스카와 헐크라는 스타를 보기 위한 관심이 더해진 결과다. ‘연봉 550억 듀오’ 오스카와 헐크가 드리블을 할 때마다 ‘오’ 하는 감탄이 터져나왔다.


경기가 끝난 뒤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오스카와 헐크의 유니폼을 얻기 위해 경기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이들의 일탈은 보안요원에게 곧 제지됐지만 CSL의 슈퍼스타들이 만들어내는 화제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한 가지 물음도 던질 수 있게 했다. 만약 똑같은 조건의 제안이라면 오스카와 헐크는 CSL 대신 K리그를 선택할까. 한겨울 밤 상암벌을 달군 열기가 남의 선수를 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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