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 25명 내고도…일본 왕실까지 나선 '노벨상 외교'

입력 2017-03-01 20:36  

스웨덴 노벨재단 행사 연 일본 학술진흥회

세계적 석학과 대중이 함께 글로벌 이슈 토론하는 자리
스웨덴 이외 일본서 유일 개최 "세계에 일본 과학자 홍보 기회"

아키히토 일왕, 만찬도 마련…왕실까지 나서 외교 가교 역할

3M·후지쓰·SMBC·스카니아 기업들도 노벨 행사 적극 지원



[ 박근태 기자 ]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유라쿠조 도쿄국제포럼 컨벤션센터.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도 휴일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캐주얼 차림을 한 대학생부터 넥타이를 맨 말끔한 노신사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이날 열린 행사는 일본 학술진흥회(JSPS)와 스웨덴 노벨재단이 공동 주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도쿄(NPD) 2017’이다. 선착순으로 배포된 행사티켓은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다.

2012년 스웨덴에서 처음 열린 이 행사는 노벨상 수상자 5~7명을 포함해 30여명의 세계적 석학이 하루 동안 대중과 어울려 글로벌 이슈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자리다. 이날 행사에는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장피에르 소바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 198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도네가와 스스무 일본이화학연구소 뇌연구소장,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 UC버클리 교수 등 수상자 5명을 비롯해 구글, IBM, 엔비디아 등 기업 연구소장 등 각 분야 석학 36명이 ‘지능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다.

라르스 하이켄스텐 노벨재단 사무총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통해 인공지능(AI)의 등장처럼 급격히 변하는 사회와 산업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일반인은 물론 젊은 과학도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가 일본에서 열린 건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스웨덴 외에는 일본에서만 유일하게 열리고 있다. 노벨재단은 당초 노벨상 수상자를 25명이나 배출한 일본은 물론 한국과 싱가포르에도 행사 개최를 제안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일본이었다. 일본이 노벨재단이 주최하는 대규모 행사를 유치한 배경에는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과학계에 대한 홍보 목적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학술진흥회 관계자는 “우리는 아직도 일본 과학자를 알리는 데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도 시각장애인이면서 AI 인공시각 기술을 개발한 아사가와 지에코 IBM연구소 연구원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젊은 일본 과학자들이 대거 패널로 참석했다. 일본 사회도 행사 지원에 한마음으로 나섰다. 2015년 첫 행사 개최 비용 9000만엔(약 9억원) 전액은 한 익명의 독지가가 냈다. 올해 행사는 3M, 후지쓰, SMBC, 스카니아 등 일본 기업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이 후원했다.

2015년 열린 첫 행사에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직접 만찬을 열어 노벨상 수상자와 노벨재단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해 6월 일본 학술진흥회가 개최한 국제 서머스쿨에 참석해 미국과 영국, 독일, 스웨덴 등에서 온 젊은 과학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도 아키히토 일왕 사촌의 부인인 다카마도 히사코 여사가 참석해 2시간 넘게 강연을 듣고 노벨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일본 학술진흥회는 이번 행사와 별도로 이날부터 1주일간 일본 노벨상 수상자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젊은 과학자들이 만나는 국제 행사인 ‘호프 미팅’을 동시에 열기도 했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KAIST 명예교수)은 “과학계에선 향후 5년간 노벨상을 받을 과학자들이 줄을 서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최근 3년간 일본 과학자의 수상이 급증한 건 과학자의 업적 외에도 이들을 뒷받침하는 일본 정부와 학계의 지원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자이 유이치로 일본 학술진흥회 회장은 폐막식에서 “격년으로 열던 행사를 내년에도 열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도쿄=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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