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앙은행 도쿄지점장이 한국을 방문한 까닭

입력 2017-03-03 11:50  



(박진우 국제부 기자) “외신들은 너무 이탈리아의 위기만 부풀린다. 한국 언론들은 다른 시각도 봐주면 좋겠다.”

마르코 델라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지난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습니다. 델라세타 지사는 지난달 28일 관저에서 직접 ‘이탈리아 은행시스템 현황 및 전망’이란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대사 자신의 친분으로 안젤로 치코냐 이탈리아 중앙은행 도쿄지점장을 강연자로 초빙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자산운용사, 증권사에서 다수 인원이 참석했지만, 델라세타 대사는 기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와이너리 가문 출신입니다. 이날 그의 가문에서 만든 와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를 직접 따라줄 정도로 신경썼습니다.

델라세타 대사는 특히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나치게 이탈리아의 위기를 부풀려 보도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개헌 국민투표도 찬반이 비등했는데 마테오 렌치 총리가 자신의 총리직을 거는 바람에 그에 대한 심판처럼 변질됐다고 했습니다. 물론 렌치 총리가 재기하긴 어렵다고 합니다. 개헌 국민투표에서 반대 측의 승리로 끝난 점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개헌이 좌절됐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사법·선거·노동·금융개혁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치코냐 지점장은 이탈리아 은행의 자본건전성이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는 취지의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중앙은행에서만 30여년간 근무한 베테랑 이코노미스트입니다.

그가 꼽은 대표적인 수치가 이탈리아 은행들의 평균 주요 자본적정성비율(CET1)입니다. 지난해 6월 기준 12.4% 수준이죠. 유럽은행 평균 14%보다는 낮습니다. CET1은 총 위험가중자산 대비 보통주 자본비율을 뜻합니다. 또 언론에서 제기된 이탈리아 은행위기는 지난해 파산한 이탈리아 3위 은행 몬테데이파스키디시에나(MPS) 만의 위기일 뿐 시스템 위기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니크레디트 한국지사와 이탈리아 2위은행인 인테사산파울로 한국지사도 초청해 20여분간 예정에 없던 설명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자산 기준 이탈리아 3위 은행의 파산이 그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 등의 보도에 힘이 실립니다. 대표적인 예로 자산 규모 기준 이탈리아 1위 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주가는 지난해 초부터 5분의 1 토막났습니다. 이 때문에 올초 130억유로 규모 자본확충에 나설 계획입니다.

델라세타 대사와 치코냐 지점장의 주장이 어쨌건, 두 사람은 해명에 무척 적극적이었습니다. 강연 이후 치코냐 지점장이 질문을 받을 땐 델라세타 대사가 옆에 앉아 정치에 관련된 주제는 항상 본인이 먼저 체크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대두되는 “‘오성운동’의 집권이 이탈리아 경제에 충격이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치코냐 지점장이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대신 자신이 나서 대답했습니다. 오성운동은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네덜란드의 ‘자유당’ 같은 극우정당이 아니라고요. 기존 입장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나 친기업 개혁 반대와 관련해서도 좀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델라세타 대사와 치코냐 지점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자국의 위기를 해명하기 위해 친분으로 전문가와 업계 대표를 데려오는 대사의 자세는 의미있게 보였습니다. 특히 최근 외신에서 한국과 관련한 보도는 FT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여러 외신의 1면에 종종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끝)/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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