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나타난 '외투 빼앗는 유령'
그는 누구인가?
짧은 희망이 지나가다
입춘이 지났지만 온난화로 녹아내린 북극의 얼음이 찬바람을 뿜어대 아직 외투를 못 벗고 있다. 한겨울에 외투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고골의 소설 《외투》는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더 추운 러시아에서 옷을 빼앗긴 남자를 그리고 있다.
남들이 볼 때 만년 구등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적은 월급으로 따분한 일을 하며 인생을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다. 정작 당사자는 400루블의 급료에 만족하며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 얼어붙는 듯한 추위가 몰아닥치자 그는 해진 외투를 수선하러 간다.
수선공은 이리저리 살펴보다 너무 낡아 더 이상 기울 수 없다며 새 외투를 권한다. 몇 차례의 간청에도 계속 안 된다는 얘기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사기로 결정한다. 지난 1년간 조금씩 모은 돈과 생각보다 많이 나온 상여금 덕에 새 외투를 장만한다. 앞으로 차도 마시지 않고 촛불도 켜지 않고 속옷 세탁도 덜하고 신발이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걸을 정도의 내핍생활을 결심하면서.
‘외투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축하 파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새 외투를 빼앗기고 만 것이다. 경찰관을 찾아가 고발하고 고관에게 간청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허세에 가득 찬 고관의 고압적인 태도에 눌린 데다 외투를 다시 구입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낙담한다. 절망에 빠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편도선염으로 열이 올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 외투를 빼앗는 유령이 나타나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고압적인 고관도 부들부들 떨면서 외투를 벗어준다. 그 고관은 어떻게 되었고 유령은 사라졌을까?
길지 않은 얘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과 행동들이 매우 인상적인 《외투》를 읽으면 각각의 태도와 마음이 읽힌다.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짧지만 긴 인생을 산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낡은 외투를 더 이상 수선할 수 없을 때의 심정, 외투를 사기로 결심하고 희망에 젖는 모습, 외투를 빼앗긴 뒤 찾아온 깊은 절망, 유령이 되어서까지 외투에 집착하는 애달픈 상황을 하나하나 짚으면 울림이 있을 것이다.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때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소원을 이룬 뒤 그것이 사라지면 절망에 눌려버린다. 힘들게 구입한 외투지만, 잃어버린 뒤에 깨끗이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무관심하고 고압적인 세상에서 꿈을 포기할 것인가, 다시 일어설 것인가. 《외투》를 읽으면서 다시 꿈꾸기를 포기한 주인공에게 전할 말을 생각해보라.
사실주의 문학의 모태
고골이 32세이던 1841년에 발표한 《외투》의 내용은 마치 주변에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현실에도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마음이 상해 죽어나갈 처지의 사람을 외면하다가, 사고가 터지면 반성하기보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 바쁜 사람들. 176년 전에 발표한 《외투》에서 교만하고 비뚤어진 현대인의 모습을 찾아보라.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이 작품은 러시아 단편소설의 모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주의 문학인 《외투》는 이상을 추구하거나 관념적인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작품과 대별된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개성을 중시하는 사실주의는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과 관찰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우크라이나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고골은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데다 전설과 민화, 춤과 유머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대도시 페테르부르크로 와서 말단 관리로 일한 적이 있다. 비굴한 관리 근성이 두려워 말단 관리 일을 그만둔 고골의 당시 꿈은 직업배우였다.
22세에 발표한 《디칸카 근교의 야화》에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사람들을 담았고 이 소설로 고골은 일약 유명세를 얻었다. 《외투》의 주인공과 달리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재능을 살린 고골. 통렬한 사회 비판으로 피신을 하는 등 힘겨운 삶을 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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