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증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어요. 정부 보증이 거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거죠.
미국·이스라엘·덴마크는 거의 보증 안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금융기업에서 받은 대출에 대해 정부가 보증해준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6%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약 56조원이다. 한국은 그리스(9.24%) 일본(5.68%)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보증을 선다.
한국 다음으로는 칠레(1.10%) 헝가리(1.08%) 스페인(0.85%) 이탈리아(0.80%)가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가 한국 다음이긴 하지만 GDP 대비 비중은 1%대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탈리아 다음은 더 급격하게 낮아진다. 사회당이 집권한 프랑스가 0.37%로 낮았다.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프랑스를 떠올리면 다소 의외라는 생각마저 든다. 핀란드도 정부 보증은 낮다. 이스라엘은 0.18%, 미국 0.14%, 캐나다 0.08%, 터키 0.06%, 멕시코 0.03%, 덴마크 0.01%다. 사실상 정부 보증이 없다고 보는 게 옳다.
한국의 경우 보증 외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금융 비중도 높다. GDP 대비 2%를 넘는다. 이것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정책금융과 정부 보증에 관한 한 한국은 중소기업 천국인 나라다.
선진국일수록 정부 보증이 낮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개인 사업에 왜 정부가 보증을 서주느냐”는 원론적인 의문이 옳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등의 나라는 거의 보증을 서주지 않는다. 정부 보증은 해당 중소기업의 사업이 잘될 경우 보증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업이 잘되지 않을 경우 보증자인 정부가 대신 갚아줘야 한다.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은 경기 변동이나 경쟁자 출현, 소비 변동, 자연환경 변화 등 많은 원인으로 인해 ‘성공’만을 보장할 수 없다.
대출자인 중소기업의 사업이 잘못돼 정부가 대신 빚을 갚아줘야 할 경우 정부는 두 가지를 이용해 빚을 갚아줄 수 있다. 하나는 납세자의 돈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채권 등을 발행해 돈을 마련하는 경우다. 첫 번째 방법인 납세자의 돈(예산)을 사용하는 경우 납세자들은 반발하게 된다. “왜 정부가 세금으로 걷은 돈을 실패한 중소기업에 사적으로 유용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익은 중소기업이 보는데 손실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메워준다면 유권자들은 화를 내게 된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만든 돈으로 보증 채무를 메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은 세금으로 상환해줄 수밖에 없다. 한 바퀴 돌아왔을 뿐 세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보증은 자원배분을 왜곡시킨다
정부가 보증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정부 보증이 거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정부 보증이 없으면 시장에서 일찍 퇴출됐을 법한 기업이 정부 보증에 기대어 사업을 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된다. 모든 자원은 대체 가능한 용도를 지니고 있는 희소자원인데, 망할 기업의 수명 연장에 이용된다면 정작 그 자원이 필요한 가망 기업의 출현을 늦춘다. 또 정부 보증이 확대되면 정부 보증만을 믿고 사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우려도 많다.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보증은 정치인들이 주로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보증하면 중소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오해를 정치인들은 이용한다.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동기가 있기 때문에 선심 정책을 쏟아낸다. 중소기업이라는 이익집단의 지원 요구를 무시할 정치인은 많지 않다. 납세자는 다수이고 납세자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속속들이 알아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가 큰 이익집단이 좋아하는 정책을 내놓기가 수월하다. 정부 보증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보증만으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자리는 정부 보증이 아니라 기업들의 혁신과 성장을 통해서만 늘어난다. 특히 이런 지원은 중소기업의 경쟁력마저 약화시킨다.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치고 강한 식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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