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 존·비속까지 등록해야 실수로 누락해도 인사 불이익
"재산 적으면 오히려 낫다"…청렴결백 이미지 얻어
별거 중인 아내가 동의서에 서명 않기도
우병우 393억으로 2년 연속 관가 최고 부자
빈자리 누가 차지할지 관심
[ 심은지 기자 ] 고위 공직자 문턱 가까이 가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재산공개다. 공직자들에게 재산공개는 아주 불편한 일이다. 재산이 너무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이다.
재산공개 시즌이 되면 이런 고민은 더 커진다. 요즘 인사혁신처엔 재산등록 관련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중앙부처 기준으로 4급 이상 공직자는 매년 3월 초까지 부동산, 금융 등 모든 재산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재산등록
인사처에 따르면 올해 재산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공무원은 총 22만4055명에 이른다. 정무직을 포함한 4급 이상 공무원, 법관과 검사, 대학 총·학장, 대령 이상 장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공직유관단체 임원 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 가운데 1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5498명)는 재산을 공개하고 나머지는 등록만 해둔다.
공직자 재산등록은 공무원들이 부정하게 재산상의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장치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얻은 사실이 인정되면 해임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작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이후 ‘주식 대박’ 논란에 휩싸인 뒤 뇌물 혐의가 인정돼 해임됐다.
재산공개 시즌이 되면 온갖 백태가 연출된다. 중앙부처 소속 A서기관(4급)은 올해 처음 재산등록을 하면서 별거 중인 아내 때문에 고민이 크다. 아내가 금융거래 정보동의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어서다. ‘배우자 정보가 누락되면 징계를 받는다’고 설득해봤지만 아내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처음으로 재산을 신고하는 공무원들은 배우자나 부모가 재산을 숨겨뒀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기도 한다. ‘아내가 나 몰래 적금 하나 넣어뒀겠지’ 정도의 소박한 기대다. 신고 기간이 끝나면 ‘역시나 없었다’고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재산을 실수로 빠뜨리거나 잘못 올려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선 앓는 소리도 나온다. 중앙부처 B국장(3급)은 아버지의 선산을 실수로 빠뜨렸다가 유학길이 막힐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다. 이 선산은 아버지의 형제 여덟 명이 나눠 갖고 있어 한 사람당 165㎡(약 50평) 정도의 소규모 땅이다.
B씨는 “당시 유학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이었는데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경고’라도 받으면 접어야 했다”며 “실수로 누락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왕복 7시간을 들여 선산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를 찾아갔다”고 말했다.
‘금수저’를 향한 부러움
중앙부처 C국장(2급)은 재산을 등록할 때마다 본인이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걸 깨닫는다. 주변에선 최근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다들 재산이 늘었다고 하는데 C국장만 몇 년 전 세종시와 안양에 있던 아파트 두 채를 모두 처분했기 때문이다. 재테크를 해보려고 본인의 직무영역과 무관한 주식을 골라 매입하면 악재가 겹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쳐 등록재산에 기재된 몇 안 되는 주식은 모두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
재산공개는 누가 ‘금수저’이고, ‘흙수저’인지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1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은 3월께 공직자윤리위원회 관보에 재산이 낱낱이 공개된다. 2015년에 이어 작년까지 2년 연속 관가의 최고 부자로 꼽혔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2015년 12월 기준 393억6700만원)의 빈자리를 누가 차지할지 관심사다.
고위 공직자들은 재산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불편하다. 적으면 오히려 낫다. 청렴결백하게 일했다는 이미지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부자 공직자들은 본인이 월급을 모으거나 투자를 잘해서 부자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 부모와 배우자의 재산인 경우가 많다.
한 경찰 고위간부는 “공무원이 무조건 가난해야 하는 건 아닌데 재산이 생각보다 많으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재산공개 후 주변의 시선이 불편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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