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올림픽 같은 것…목표 있어야 대학들 뛴다"
"평가무용론은 일종의 '회피', 문제 있다면 지표 바꿔야"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글로벌 톱 대학을 가리는 세계대학평가부터 국내 부실대학 컷오프 성격의 대학구조개혁평가까지, 지난 10여 년 대학가는 ‘평가의 계절’을 관통했다. 평가 피로증이 캠퍼스를 휘감았다. “순위경쟁에 매몰돼 대학의 본질을 잃었다”는 불만은 평가 무용론(無用論)까지 불렀다.
과연 대학평가는 유효한가.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유명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의 아시아대학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서의호 포스텍(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사진)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대학랭킹포럼 대표와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 평가 자문위원으로 있는 대학평가 전문가다. 학내에선 대학평가위원장을 맡아 2010년 포스텍을 THE 평가 28위에 올려놓았다. 주요 세계대학평가 가운데 국내 대학 최고 순위로 남아있다.
“여전히 평가는 중요합니다.” 서 교수가 단언했다. 그는 대학평가를 올림픽에 비유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대학들도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실력이 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학평가의 동기 유발 측면에 초점을 맞춘 긍정론이다.
평가가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평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면 지표 문제는 평가기관에 요구해 바꿔나갈 수 있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인공지능(AI), 무인자동차 등 창의적 연구나 산학협력 관련 평가지표를 넣는다든지. 평가가 대학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평가가 진짜 필요한 이유는 고착화된 대학서열을 깨뜨리는 ‘기대 효과’ 때문이다. 서 교수는 대학 수준을 가늠하는 3요소로 첫째 평판, 둘째 입학 성적(커트라인), 셋째 평가 순위(랭킹)를 꼽았다. 앞의 둘에 비하면 랭킹은 대학의 노력이 상당히 반영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대학 평판은 보수적입니다. 정말 안 바뀌어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사람들 인식에 깊숙이 박혀있는 거죠. 다른 대학들이 아무리 애써도 이 틀을 넘기 어려워요. 평판과 연동된 대학 커트라인도 몇 년 만에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대학평가에서는 머릿속 서열과 다른 결과가 종종 나온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포스텍뿐 아니라 같은 종합대인 성균관대, 한양대가 SKY를 앞지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평가가 특정 대학에 유리하게 설계됐다거나, 일부 대학의 마케팅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 상황이 이런데 랭킹이 바뀐다고 사람들 인식이 달라질까요.
“쉽지 않죠. 하지만 그나마 대학이 노력해 바뀔 여지가 있는 게 랭킹이에요.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하면 인식이 달라질 수 있어요. 포스텍도 국내에서는 서울대·KAIST와 경쟁하는 입장인데 적어도 랭킹에서는 앞서나가려 하는 게 그런 이유입니다.”
- 전례가 있습니까?
“SKY만 보면 늘 그대로인 것 같지요?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선 포스텍·KAIST가 SKY 틀을 깼잖아요. 랭킹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겁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1970년대에 비하면 중앙대나 경희대는 확실히 랭킹이 올라갔어요. 중요한 점은 사람들 인식도 따라 바뀌었다는 겁니다. 사실 랭킹은 중상위권 대학에서 영향력이 더 크죠.”
서 교수는 대학평가가 똑같은 룰(rule)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라는 점, 인풋(투자)과 아웃풋(성과)의 비례 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막연한 대학 인지도 경쟁을 탈피해 ‘의미 있는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질문을 바꿨다.
- 랭킹, 믿을 만한가요? 평가마다 순위가 오락가락하는데요.
“지표나 배점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면 어떤 평가는 연구력, 또 어떤 평가는 평판도 비중이 높아요. 지표도 조금씩 차이가 나죠. 그래서 평가 순위가 같을 수 없는 겁니다. 단순히 순위가 높다, 낮다가 아니라 무엇을 중시하는 평가인지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대중이 보기엔 헷갈릴 수 있겠습니다만.”
- 평가마다 다르다고 해도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항상 최고 수준입니다.
“맞아요. 하버드·스탠퍼드 같은 명문대는 어떤 기준을 갖다대도 항상 세계 톱10에 듭니다. 포스텍도 이런 솔리드(solid)한, 흔들리지 않는 대학이 되는 게 목표예요. 해외 대학과 경쟁하는 한국 대학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 전제 하에 랭킹 자체의 경향성은 의미 있다고 봐요.”
인터뷰 내내 그의 대답은 막힘없었다. 대학평가가 연구논문에 치중하는 경향을 지적하자 “연구와 교육은 별개가 아니다. 교수가 연구를 잘해야 강의도 잘할 수 있다. 대학의 펀더멘털(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THE 평가의 경우 산학협력 지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요구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평가는 대학서열 변화를 이끌어내는 ‘점진적 해법’에 속한다. 서열을 부정하며 해체를 주장하는 서울대 폐지론 류의 급진적 해법과는 결이 다르다. 서열 자체는 인정하되 노력해 바꿔낼 수 있다는 점이 대학평가의 순기능이라고 서 교수는 힘줘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벌이 나의 대우를 결정하겠지.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좌절감, 무력감이 커요.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학생들이 ‘이 분야 1등 대학을 나왔다’, ‘우리 학교는 뜨는(rising) 대학이다’ 같은 자신감을 가지게끔 만들어야죠. 랭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로젠탈 효과’(칭찬의 긍정적 효과)로 인해 학생들 사기가 올라가고 대학이 발전하는 선순환의 계기가 된다고 그는 부연했다.
“대학의 노력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평가라는 틀이 있어야 대학들도 뜁니다. 랭킹이 대학 PR·마케팅 수단이라는 비판은 한쪽 측면만 보는 거예요. 대학 변화의 동력원으로 삼고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기능이 정말 중요하죠. 그래서 평가는 앞으로도 필요합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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