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최저임금 1만원의 불편한 민낯

입력 2017-03-08 17:24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고교 은사께서 노후대책 삼아 퇴직금으로 시작한 24시간 편의점 사업을 얼마 전에 접으셨다. 아르바이트생 인건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계산에 심야 편의점 일을 직접 한 게 화근이었다.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져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가끔 찾는 집 근처 호프집의 아르바이트생은 사장님 아들이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호프집을 열었는데, 아르바이트 직원의 최저임금을 우습게 봤다가 법적으로 당한 ‘학습 효과’다.

두 가지 사례를 든 이유는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최저임금 1만원’ 때문이다. 대통령선거 주자들은 ‘2020년 1만원 인상(시급)’으로 세몰이 중이다. 결혼 취업 등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는 의미의 신조어 ‘N포 세대’에 먹힐 것이라는 셈법이 작용했을 터다.

가파르게 오르는 최저임금

노동계도 가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6월 최저임금 투쟁’을 공식화하고 1만원 실현을 위해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최저임금 결정 메커니즘도 관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이달 말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이 요청하면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심의에 나서 90일 이내에 결정한다. 몇 가지 흥행요소가 버무려졌으니 핫이슈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저임금은 모든 근로자에게 법적으로 지급을 강제화(동거하는 친족, 입주 가정부 제외)한 급여다. 근로자 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곧 무조건적 급여 인상인 만큼 좋을 수밖에 없다. 적용 대상의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여서 ‘더불어 사는 사회 구현’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불편한 구석이 적지 않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최저임금은 연평균 8.7%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2.6%), 국민경제 생산성 증가율(4.7%), 명목임금 상승률(5.0%)을 크게 웃돈다. 최저임금 근로자를 두고 있는 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이 지급 여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는 얘기다. 올해 시간당 6470원에서 2020년 1만원으로 올린다면 3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18.2%에 이른다.

'프레임의 덫' 경계해야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사용자와 근로자 쌍방 간 계약으로 이뤄지는 ‘사적 자치’의 범위 밖이다. 업종이나 사업장 소재지와 무관하게 단일 기준을 적용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많이 쓰는 생계형 자영업의 생존과 맞닿아 있어 가파르게 오르면 자영업 기반이 붕괴될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최저임금 1만원이 갖는 강력한 ‘프레임의 덫’이다. ‘1만원은 받아야지’라는 인식은 지급 여력보다 지급 당위성을 확산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여건상 힘들다”며 반발하는 모든 사업자를 ‘나쁜 사장님’으로 등가화하는 것이다.

사업하려는 의지를 꺾고 우리 경제가 잘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력한 힘을 갖는 프레임의 덫은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구애를 가져올 게 뻔하다. 불편해도 지금은 최저임금 1만원의 민낯을 얘기할 때다. ‘후손들에게 떠넘긴 세금 폭탄’이라거나 ‘청년층과 중장년층 간 갈등 요인’ 등. 무상 복지와 정년 60세 연장법의 민낯을 애써 모르쇠로 일관한 대가는 이미 치르고 있지 않은가.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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