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아라 기자 ] "어린 두 손주들을 데리고 매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큰 상관은 없지만, 우리 손주들에게는 정의로운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서요. 정말 기쁩니다."
박근혜 전(前)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첫 주말인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한결 따뜻해진 봄 날씨 덕에 집회를 즐기는 인파들로 북적였다. 머리가 희끗한 60대 후반의 한 할머니는 "아픈 다리 이끌고 매주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모이자! 광화문으로! 촛불 승리를 위한 20차 범국민 행동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집회를 열었다. 오후 4시에 시작하는 본 집회에 앞서 퇴진행동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17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이을재 퇴진행동 시민참여특위 공동운영위원장은 "2017 촛불권리선언은 총 4608자의 위대한 촛불선언문"이라며 "소박하지만 준엄한 대한민국의 청사진이자 대헌장"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 측은 "촛불 개혁과제가 민주주의가 가보지 못한 긴 여정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며 "광장의 촛불은 정치, 일터, 현장 등 일상의 촛불로 확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직장인 송윤구 씨(30)는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역사의 한순간이었다"라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한 시민이 '잔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전을 구워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 쪽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발'에 맞서 평화를 지켜냈다는 의미의 '노발평화상' 상장을 뿌리는 시민도 있었다. 그동안 집회에 등장해왔던 봄꽃밥차의 '박근혜 그만두유'도 등장했다.
봄꽃밥차의 매니저 김동규 씨(45)는 "탄핵심판이 인용되어 정말 다행입니다"라며 "시민들도 이제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고 전했다. 오후 3시부터 준비한 3000여 개의 '박근혜 그만두유'는 1시간도 되지 않아 동났다.
촛불집회의 주요 목표였던 탄핵이 결정됨에 따라 비정규직 환경 개선, 세월호 진상 규명 등 다양한 목소리들도 울려 퍼졌다. 다음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의 한 회원은 "대통령의 탄핵 인용 결정은 당연한 결과다. 다만 속상한 점은 파면 사유에 세월호 참사 대응 건이 포함되지 못한 것"이라며 "빨리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해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6주기를 맞아 탈핵을 촉구하는 행사도 열렸다. 시민사회단체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원전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담긴 나비 행진을 펼쳤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했다.
광화문 광장 곳곳에는 "촛불 승리 "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들이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본떠 만든 인형 앞에서 셀카를 찍는 시민들도 있었다. 탄핵 인용을 기념해 설치된 포토존에는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 탄핵 찬성 집회 주최 측인 퇴진행동은 "대선 국면에서 편파적 개입이 발생하면 다시 촛불을 들겠다"고 덧붙였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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