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라멘, 온타마란돈 덮밥 별미
1500종류의 고구마 소주…메이지유신 주조법 그대로 사용
따뜻한 물에 섞어 마시는 '오유와리' 한 잔…향기가 코끝에
이부스키에서 뜨거운 모래찜질 15분이면 땀 흠뻑…피로 '싹'
'일본호텔·여관 100선' 슈스이엔 료칸 32년째 요리부문 1위…맛 최고
15분 걸리는 화산섬 사쿠라지마 페리선 안에서 먹는 우동
일본 규슈 지역에 자리 잡은 가고시마현은 전체 인구가 약 180만명이다. 중심도시인 가고시마시에는 약 60만명이 살고 있다. 최근 방송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진 가고시마는 풍광도 풍광이지만 미식가들에게는 ‘맛의 도시’로 유명하다. 흑돼지 요리와 소주 등 맛있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규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는 인파로 붐비지만, 가고시마는 한결 한적하고 여유롭다. 가고시마 시내를 걷다보면 1970년대 스타일의 전차가 댕강댕강 종을 울리며 굴러다니는데, 이국적인 정취도 더하고 여행의 낭만도 한껏 느끼게 해준다. 화창한 봄날 가고시마로 ‘먹방’ 여행을 떠나보자.
고소한 맛과 뛰어난 식감 가고시마 돈가스
가고시마 먹방 여행의 출발은 돈가스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 시내에 들어섰다면 분명 점심 무렵일 터. 흑돼지 돈가스로 일단 허기진 배부터 채우자. 흑돼지(구로부타)는 가고시마 최고의 별미로 꼽히는 음식이다. 흑돼지는 가고시마가 일본 최대 산지인데, 미네랄 성분이 함유된 지하수와 고구마를 발효한 사료를 먹어 육질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가고시마중앙역 근처에 있는 ‘구로카쓰테이’는 가고시마에서 손꼽히는 돈가스 맛집이다. 1975년 문을 열었다. 가고시마의 계약농장에서 기른 흑돼지를 사용한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이 돈가스 정식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곳으로 현지인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상 로스카쓰 런치’다. 가게 입구 입간판과 메뉴판에 ‘대표 메뉴’라고 광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여행을 통해 배운 노하우 가운데 하나는 무슨 메뉴를 시킬지 주저될 때는 식당에서 권하는 메뉴를 선택하는 게 제일 낫다는 것.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땐 무조건 ‘오늘의 메뉴’를 시키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제일 적다.
역시 선택은 옳았다. 최상급 등심을 사용한 로스카쓰는 ‘비주얼’부터 달랐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두툼한 돈가스가 접시 위에 올라 있다. 잘린 단면을 보니 지방이 반을 넘는다. 이는 곧 지방에 자신이 있다는 말. 한 입 크게 베어 무니 살 사이에서 빠져나온 육즙이 입속을 가득 채운다. 비계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진 탄력 가득한 식감도 압권이다. 한국에서 먹는 돈가스와는 맛이 전혀 딴판이다. 안심과 등심을 골고루 사용한 ‘구로카쓰테이 런치’와 돼지 허벅지살로 만든 ‘모모카쓰 런치’도 맛있다.
흑돼지 샤부샤부와 돈코쓰 라면의 풍미
돈가스가 점심으로 어울린다면 흑돼지 샤부샤부는 저녁으로 먹기에 좋다. 한국인에게 돼지고기 샤부샤부는 아직 익숙지 않은 음식이다. 사실 일본에서도 돼지고기 샤부샤부를 먹기 시작한 건 불과 30년 전이다. 가고시마에서 시작됐는데 가고시마 흑돼지의 부드러움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돼지고기 샤부샤부를 주문하면 다시마 육수가 가득 담긴 냄비와 대패삼겹살처럼 얇게 저민 돼지고기 한 접시가 나온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고기 한 점을 육수에 살짝 데친 후 입 속으로 가져가면 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린다. 너무 익히지 말고 살짝살짝 흔들며 데쳐먹는 것이 요령이다.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구마소테이’는 가고시마에서 흑돼지 샤부샤부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라멘도 맛보자. 규슈는 돈코쓰 라멘으로 유명하다. 돼지뼈를 푹 고아 우려낸 걸쭉하면서도 묵직한 육수에 탱탱한 면을 푸짐하게 담아낸다. 일본 라멘은 도시마다 약간씩 특색이 있는데 돼지뼈와 닭뼈, 채소를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뽑은 가고시마 라멘은 후쿠오카나 구마모토 등의 여타 규슈지역 라멘에 비해 약간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온타마란돈’도 빼놓을 수 없다. 야가와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와 달걀을 천연 스나무시(모래찜질)로 삶아낸 다음 가고시마 흑돼지구이와 함께 밥에 올려 먹는 덮밥의 일종이다. 밥 위에 올려진 계란 노른자가 터지면서 밥과 재료들을 부드럽게 섞어준다. 가고시마 시내에 덮밥집이 많은데 집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온타마란돈을 만들어낸다.
1500종류의 소주 생산하는 명산지
가고시마 특산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고구마 소주다. 가고시마에서 생산하는 고구마는 한 해 32만t. 전국 1위를 자랑한다. 가고시마 사람들은 이 고구마를 이용해 소주를 빚었다. 가고시마현 내에만 100곳이 넘는 양조장이 있고 1500종류의 소주를 생산한다. 일본인들에게 사케는 사케지만 가고시마에서만은 사케는 곧 소주를 말한다. 고구마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도의 증류주다.
‘메이지 구라’는 가고시마 최대 소주 공장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메이지 유신 때 만들어진 소주 제주법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해 소주를 빚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 술은 ‘시라나미(白波)’ 소주. 쌀누룩과 최상급 가고시마 고구마를 잘 섞은 다음 약 10일간 숙성시켜 만든다. 양조장은 견학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달짝지근한 고구마 소주 냄새가 ‘훅’ 하고 끼치며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100년 된 항아리가 도열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와 달리 소주를 물에 타 마신다.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시는 걸 ‘오유와리’, 찬물에 마시는 방식을 ‘미즈와리’라고 한다. 아무래도 소주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오유와리가 좋다는 것이 증류소 가이드의 조언이다. 그의 말대로 미지근한 물과 소주를 6 대 4로 섞은 오유와리 한 잔을 코 끝에 대니 그윽한 향이 콧속으로 스며든다. 한 모금 마시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고구마향. 목 넘김도 부드럽다.
샛줄멸회는 고구마 소주와 찰떡궁합
가고시마 소주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가고시마중앙역 앞에 있는 야타이무라(屋台村)로 가보시길. 야타이(屋台)는 일본식 포장마차를 의미하는데, 여기에 마을을 뜻하는 무라(村)가 붙었으니 포장마차촌 정도 될 듯. 모두 25개의 작은 점포가 모여 있다. 해질 무렵이면 여기저기 등이 켜지고 신선한 제철 생선은 물론 꼬치와 돼지고기 요리, 라멘 등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들을 안주 삼아 가고시마 소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건물들이 마치 드라마 세트장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가게 앞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있어 일본 거리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기분좋게 마실 수 있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이자카야 탐방도 즐겁다. 추천하고 싶은 곳은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유도우후곤효우에’라는 이자카야. 관광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두부전골과 꼬치 등을 파는 작은 이자카야로 60년 전 처음 생겼을 때와 메뉴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한다. 자리에 앉으면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직접 내준다. 옆에 앉은 일본 할아버지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는데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다”고 답하니 할아버지는 “여기가 20년째 단골인데 온천두부 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그러고는 “이 집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최고야”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가고시마 이자카야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기비나고’(샛줄멸회)도 맛보자. 부드럽고 진득한 샛줄멸회 한 점과 은은히 번지는 소주의 고구마 향이 잘 어울린다.
규슈 제일의 료칸과 이자카야
가고시마를 찾는 대부분 여행객들은 이부스키로 간다. 천연 모래찜질을 즐기기 위해서다. 해안에 검은 모래사장이 펼쳐지는데 이곳에 모래찜질방이 마련돼 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우면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모래를 삽으로 덮어준다. 10~15분 정도 누워 있으면 온몸이 땀에 젖는데 그동안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미식가들이 굳이 이부스키까지 찾는 이유는 모래찜질 때문이 아니라 슈스이엔이라는 료칸에 묵기 위해서다. 슈스이엔은 ‘일본의 호텔·여관 100선’에서 무려 32년째 요리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 우유를 넣어 만든 두부, 게를 섞어 만든 젤리 등 다섯 가지로 이뤄진 전채, 잘 숙성된 사시미, 흑돼지 찜, 옥돔 다다키 등으로 이뤄진 슈스이엔의 가이세키는 맛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일본 정찬요리의 절정을 보여준다. 음식이 담겨져 있는 그릇 하나하나도 최고급품을 사용한다.
긴코 만 한가운데 있는 화산섬인 사쿠라지마 역시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으로 가고시마 부두에서 직선거리로 4㎞ 떨어져 있다. 페리로 15분이면 닿는다. 2만6000년 전 처음으로 분화했으며 가장 최근의 분화는 1914년. 지금도 하루 세 번꼴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고 한다.
사쿠라지마로 가는 페리 안에서 먹는 우동이 별미다. 우리네 ‘가락국수’를 생각하면 된다. 진한 가쓰오부시 국물에 굵은 면발이 담겨 있다. 우동 한 그릇을 먹다보면 어느새 사쿠라지마에 도착하는데, 오며 가며 먹는 이 우동 맛을 못 잊어 배를 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디저트 삼아 먹기 좋은 달달한 먹거리도 있다. 가고시마 시내 덴몬칸 입구에 있는 ‘시로쿠마 빙수 가게’다. 시로쿠마는 ‘하얀 백곰’이라는 뜻. 가고시마에서는 흑돼지와 소주 못지않게 유명한 음식이다. 도쿄까지 택배로 배달할 정도라고 한다. 한 그릇에 700~800엔 정도인데 둘이서 나눠 먹기에 적당하다.
가고시마=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까지 대한항공이 운항한다. 비행기간은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어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다. 가고시마의 3월 평균 기온은 19도 정도로 가벼운 티셔츠 하나 걸치고 돌아다니기 딱 좋다. 규슈 레일패스를 이용하면 규슈 내에서 JR(일본철도)을 5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사쿠라지마 가는 페리는 15분 간격으로 하루 24시간 뜬다. 성인요금 160엔. 가고시마 시내를 누비는 노면전차 요금은 성인 160엔. 도심 명소 15곳을 순회하는 시티뷰 버스도 있는데 하루 600엔으로 몇 번이라도 갈아탈 수 있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kagoshima-kankou.com/kr)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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