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 위치 돌아가야 위기설 해소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를 논할 때 ‘뉴 노멀’이라는 용어를 자주 듣는다.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신조어다. ‘불확실성(1977년 케네스 갤브레이스)’을 넘어 ‘초불확실성(2017년 배리 아이컨그린)’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럴 때 각국 경제는 대통령 역량에 좌우되고, 못할 때는 곧바로 탄핵에 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못 돼 ‘탄핵설’이 제기됐다. 막말 파동, 음담패설, 유색인종 차별, 러시아 내통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도청설 등으로 미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초 공화당 후보 경선 참여 때 ‘부적격설’, 당선 직후 ‘무효설’과 같은 선상에서 나온 ‘트럼프 혐오증’이다.
미국 대통령 탄핵 절차는 하원에서 발의와 소추하고 상원에서 결정한다. 현재 하원, 상원 모두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의 윤곽이 잡히면서 최근에는 국민 지지도가 올라가는 추세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당선 직전보다 15%나 올랐다.
국가기밀 누설, 역외탈세 의혹 등으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프랑수아 울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5월 예정된 대선을 포기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후유증은 크다. 정치적으로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마린 르펜이 급부상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경제는 유로 핵심 회원국 중 가장 부진하다.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도 있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다. 부정부패와 무능력이 가장 큰 사유다. 경제는 파탄됐다. 호세프 탄핵설이 제기된 이후 브라질 경제는 -3%대까지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국채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도 한때 50%가 넘는 환차손으로 심한 마음고생에 시달렸다.
후임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도 탄핵에 몰리고 있다. 전임 호세프와 마찬가지로 페트로브라스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에서다. 주말마다 브라질판 ‘촛불(테메르 지지)’과 ‘태극기(호세프 지지)’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 최대 관심인 차기 대선이 치러질 수 있느냐는 테메르 대통령이 자진 하야할 경우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집권만을 위해 너무 퍼주다 탄핵에 몰리고 있다. 전임 우고 차베스에 이어 정치적 포퓰리즘의 극치다. 국고는 바닥난 지 오래됐고 경제는 위기 일보직전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체념에 조국을 등지는 국민도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처럼 비선조직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리는 대통령도 있다.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다. 취임 직후부터 인도 굽타그룹에 의해 조정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일 탄핵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공공의 적’ 백인층 토지개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보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사이 남아공 경제는 ‘속빈 강정’에 비유될 정도로 부실해졌다.
이 밖에도 부정부패와 무능력 등으로 탄핵을 당하거나 탄핵에 몰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장기집권자 대부분이 해당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턴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실감케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탄핵 과정에서 해당국 국민이 당한 고통은 탄핵 당사자인 대통령보다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세상이 변했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국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거나 몰리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 대통령과 국민 간 관계가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이 우월적 지위로 복귀했다. 각국 경제도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지키는 시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당사자보다 국민이 당한 고통과 희생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성장률도 2%대로 추락했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과 환율조작 압력, 시진핑 정부의 사드 배치 보복,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주변 정세의 대변화에도 ‘무정부’ 상태로 사실상 방치됐다. ‘한국 경제 4월 위기설’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재탄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것만이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지난 6개월간 벌어진 지루한 시위 과정에서 국민이 당한 고통과 희생의 대가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와 국회의원, 그리고 공무원은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권을 들락거리는 폴리페서도 지금 그네들이 가르치는 젊은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모두가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4월 위기설’도 해소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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