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 게리 콘은 정부 내 지지 얻으며 영향력↑
통상전쟁 우려한 외국 관료들 일단 안도 분위기
[ 이상은/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자 ‘통상전쟁을 두고 백악관에 벌어진 내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불꽃 회의’가 벌어졌으며 나바로 위원장 측의 힘이 약해지고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보다 온건한 자유무역주의자들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무진 없는 NTC
백악관에는 경제 문제와 관련한 두 개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하나는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든 NEC고, 다른 하나는 지난해 12월21일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NTC다.
국가안보위원회(NSC)나 NEC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NTC의 실제 위상은 크게 달랐다. 사무실도 백악관 바깥에 있고 직원이 거의 없어 실무를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나바로 위원장 개인을 보좌하는 조직에 불과했다. NEC는 백악관 내에 있고 인력도 충원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엔 나바로 위원장 쪽에 힘이 더 실렸다. 그는 주요 언론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보호무역주의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지난 1월 말 FT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을 겨냥해 유로화가 엄청나게 평가절하돼 있으며 독일이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그의 공격 대상이다. 그는 이달 2일 미국 상무부에 “한국산 유정용 강관의 덤핑 마진을 9~15%에서 36%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6일에는 삼성과 LG전자를 콕 집어 “무역 사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나바로 위원장을 ‘트럼프의 전투견’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협상 주도권 온건파가 잡아
하지만 지난 몇 주 사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콘 위원장 등 온건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득세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FT는 내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콘 위원장과 그의 사람들이 나바로 위원장을 배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콘 위원장은 나바로 위원장의 독일과의 무역적자 발언 등으로 인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을 강조하며 행정부 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나바로 위원장의 ‘소통 부족’도 한 원인이다. 그는 지난달 상원 소속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브리핑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았다’ ‘모호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임명된 정통 자유무역주의자 앤드루 퀸이 NEC 국제통상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것도 나바로의 위세를 흔들었다. 퀸 보좌관은 지난달 보수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발탁됐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담당한 자유무역·다자무역협정 지지자로 꼽힌다.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븐 배넌이 만든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는 퀸 보좌관을 두고 “트럼프 정부 안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콘 위원장 측이 승기를 잡았다는 신호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9일 콘 위원장 등은 멕시코 외무장관과 만나 연말까지 신속하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관련 재협상을 마치자고 했다. 이는 나바로와 함께 보호무역주의자로 꼽히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내년까지 더 오랫동안 깊이 협상하자고 한 것과 배치된다.
강경 보호무역론자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통상전쟁’을 우려해온 외국 관료들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FT는 외국 관료들이 나바로 위원장 대신 콘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을 찾아 NAFTA 문제 등을 상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상은 기자/워싱턴=박수진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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