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가는 청춘들 왜?
자유로운 업무환경
직급 없이 '님'이라 부르며 소통, 만화방·오락실·바도 있어
성과만큼 보수 받는 게 매력
내가 왜 이 길을 가나 할 때는?
체계적 시스템 없어 멘붕의 연속, 주 5일 근무 바라는 건 욕심
독보적 아이템 없으면 짐 싸야해
[ 남윤선 / 임원기 / 이승우 기자 ] 명문 Y대 경영학과를 나온 A씨는 최근 합격한 대기업을 뒤로한 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대기업의 딱딱한 군대식 조직문화 속에서 ‘부품’으로 일하는 것보다 스타트업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치는 게 낫다는 게 A씨의 판단이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5년 만에 수백억원을 해외에서 유치하며 대박을 낸 중학교 동창 B씨의 영향도 컸다. A씨는 “대기업보다 월급은 적지만 대표와도 자유롭게 대화하는 문화와 나에게 많은 역할이 맡겨지는 회사 시스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열풍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고 기존 산업 질서가 무너지자 새 시대의 ‘스타’가 되고 싶은 젊은 기업가가 잇따라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고 있다. A씨와 같은 젊은이도 대기업의 안정성과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 스타트업의 천태만상을 들여다봤다.
“성과급 받고 싶으면 대표 찾아오라”
스타트업 문화는 대기업과는 천양지차다. 자유롭고 열려 있다. 젊고 창의적인 창업자가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도 ‘톡톡’ 튄다. 대부분 스타트업엔 ‘김과장 이대리’도 없다. 과장, 대리 직급 같은 걸 쓰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미디어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직방은 사무실에 개인 자리가 없다. 아무데나 앉아서 일하면 된다. 사무실 중심에는 ‘마을회관’이라는 공간이 있어 직원들이 수시로 짧은 회의를 한다. 칸막이도 물론 없다. 또 전 직원은 꼭 한 층에서 다같이 일해야 한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사무실 이사까지 했다. 짧고 빈번한 소통을 강조하는 안성우 직방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스마트폰 바탕화면 리워드 앱(응용프로그램)을 제작하는 NBT의 사무실에는 대표(박수근)의 이름을 딴 ‘수근바’라는 바(bar)가 있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수시로 맥주 등을 마시며 얘기한다. 동영상 통화 앱을 만드는 하이퍼커넥트도 회사 한 층을 바, 만화방, 오락실, 체력단련실 등으로 꾸며놨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스타트업 근무자는 독서실보다 스타벅스에서 공부하는 걸 더 좋아하던 젊은 세대”라며 “업무도 책상에 앉아 하기보다 자유롭게 토론하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대화하고 쉬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게 그저 ‘쿨’한 것만은 아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 대표적인 게 교육·연수다. 신입사원이 입사해 뭘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시간도 없다. 스스로 알아서 배우고 금세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해야 한다.
‘맡은 업무만 한다’는 개념조차 없다. 뇌졸중 환자 재활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네오펙트의 최안나 홍보팀 차장이 대표적이다. 언론 홍보가 주 업무인 그녀는 작년 중반부터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7 참가 준비를 했다. 회사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기획, 대행업체 섭외까지 혼자 도맡아야 했다.
많은 스타트업은 직원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근무하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핵심 인력인 개발자들이 일이 잘될 때 몰아서 하거나, 밤근무를 선호해서다. 게임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다니는 박모씨는 “밤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하는 개발자가 많다”며 “원하는 시간대에 효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것이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집 설계 도면을 3차원(3D) 도면으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어반베이스는 직원을 일찍 퇴근시키고 임원만 야근을 한다. 임원이 일찍 자리를 떠도 직원은 밤새 일하는 경우가 많은 대기업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런 고된 삶이야말로 스타트업의 진짜 매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네오위즈 등 여러 개의 기업을 세우고 성공시킨 장병규 본엔젤스파트너스 파트너는 “스타트업은 기존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시스템 안에서 일을 배워야 하느냐”며 “사막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며 오아시스를 찾는 게 진짜 배움”이라고 말했다. 네오펙트의 최 차장은 고군분투하며 고생했지만 덕분에 회사가 미국 CNN에 소개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스타트업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다.
대박? ‘만에 하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회사를 차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역시 가장 큰 건 ‘대박의 꿈’이다. 스타트업을 키워 상장하거나 대기업 등에 비싼 값에 매각하면 월급쟁이는 꿈도 못 꿀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붐도 2002년 간편결제서비스인 페이팔을 온라인상거래 업체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린 피터 틸, 엘론 머스크 등 10여명의 창업자, 즉 페이팔 마피아가 본격화시켰다.
가상현실(VR)기업 리얼리티어플렉션의 노정석 최고전략책임자(CSO)는 과거 태터앤컴퍼니, 파이브락스 등 두개 회사를 각각 미국의 구글과 탭조이에 매각했다. 모바일광고 테크기업인 퓨쳐스트림네트웍스를 창업한 신창균 대표는 옐로모바일에 지분을 매각해 적지 않은 돈을 번 데 이어 최근엔 스타트업 꿈인 코스닥 상장까지 일궈냈다. 그래서 기존엔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컨설팅 업체나 투자은행, 삼성전자 등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수근 대표나 직장인이 많이 쓰는 명함관리앱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대표 등이 해외 유명 컨설팅업체 출신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신화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가사도우미 연결 서비스를 하던 홈클은 소비자에게 호평받았지만 카카오라는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자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콜택시 서비스인 리모택시 역시 카카오의 시장 진입으로 밀려났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스타트업은 망해도 또 창업하고 열심히 일하며 역량을 발휘하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만 해야 한다”며 “삶의 안정이나 일과 가정의 균형 같은 걸 중시하는 사람이 ‘쿨함’이나 ‘대박’만 보고 뛰어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남윤선/임원기/이승우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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