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고수와 하수

입력 2017-03-15 17:39  

일관성 있어야 골프도 정치도 성공
말보다 진짜 실력으로 대선 승부를

이관우 레저스포츠산업부 차장 leebro2@hankyung.com



골프는 일관성 게임이다. 의도한 방향으로 필요한 거리만큼 공을 보내는 자가 필드를 지배한다. 이 일관성이 산업현장에선 규격화다. 엄격한 품질관리에 기업들이 몰두하는 것은 ‘약속한 규격’을 지키기 위해서다.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운 ‘6시그마’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래서다. 기업들은 이미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게임의 지배자가 되길 원한다.

골퍼든 기업이든 생산물의 품질 편차가 큰 ‘불량 규격’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골든슬래머’ 박인비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일관된 샷과 퍼팅으로 명예와 부를 한 손에 쥐었다. 우즈는 연습라운드 때 스톱워치를 자주 꺼내든다. 샷 준비동작인 프리샷루틴에 걸리는 시간을 초단위로 재기 위해서다. 박인비는 똑같은 리듬과 템포를 만들어내기 위해 페어웨이와 그린 위를 걷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애쓴다. 대회장 밖에선 속사포 달변을 쏟아내는 유쾌발랄 그와는 다른 면모다.

‘골프머신’을 만드는 일관성은 연습의 산물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최다승(82승)의 전설 샘 스니드는 “연습이 근육에 두뇌를 심어준다”고 했다. 고수는 근육두뇌를 기르는 데 집중하고 하수는 장비수집에 집착한다.

일관성의 또 다른 축이 멘탈이다. 작은 버그(bug) 하나가 슈퍼컴퓨터를 무너뜨리듯, 불안과 공포는 골프머신을 침몰시키는 바이러스다. ‘걱정한 곳으로 공이 날아가는’ 희한한 경험은 두려움이 만든 물리적 인과응보다. 오른쪽 슬라이스가 무서워 슬금슬금 왼쪽을 바라보면, 공이 점점 더 깎여 맞는 궤도가 그려진다. 악성 슬라이스가 날 확률이 증폭된다는 얘기다. 왼쪽 OB(아웃오브바운즈)가 눈에 밟혀 오른쪽으로 슬금슬금 돌아서면 훅이 날 공산이 커진다. 공이 오히려 더 감겨 맞는 궤도로 셋업이 되기 때문이다. 하수들의 악순환이다.

정치라고 다르지 않다. 약속한 정책을 이행하는 일관성은 정치 정신의 궁극이다. 하지만 말을 바꾸고 표리부동한 불량정치는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선거 때는 힘을 빼다가 막상 당선되면 목에 힘이 들어간다. 표심에 눈멀어 내심을 감추는 배반의 정치다. 겉으론 정직을 외치지만 뒤로는 속임수가 난무한다. 오죽했으면 ‘변명이 끝도 없다’는 게 골프와 정치의 닮은꼴이라 했을까.

입골프는 쉽다. 말로는 모두가 PGA 챔피언이다. 실전 고수는 수만 번의 연습과 시행착오, 두려움을 이겨낸 이들만이 누리는 경지다. 무엇보다 오류를 인정할 줄 알아야 고수다. 프로들은 어드레스에서부터 느낌이 이상하면 자세를 푼다. 엉뚱한 쪽으로 서 놓고도 제대로 섰다고 우기는 게 가짜 고수들의 착각이요, 오만이다.

글로벌 정치, 외교 무대는 절대 고수들의 전쟁터다. 18홀을 여러 라운드 돌아 점수를 따지는 스트로크 플레이가 아니다. 승부가 곧바로 결정되는 1 대 1 매치플레이가 매일같이 벌어진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이웃 나라든, 비즈니스 파트너든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정글법칙이 대세다. ‘말의 성찬’에 익숙한 하수가 통할 리 없다. 조기 대선을 코앞에 두고 쏟아지는 출사표가 미덥지 못한 까닭이다.

이관우 레저스포츠산업부 차장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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