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항저우 등의 봄맞이 보양식
구수하고 진한 국물에 개운한 뒷맛
며칠 전 시장에 갔다가 냉이를 한 바구니 사왔다.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고, 한 국자 떠서 간을 봤다. 입 안 가득 향긋한 봄내음이 밀려왔다. 봄나물은 단맛이 난다. 언 땅이 녹고 나면, 흙도 달콤해지는 것일까. 따뜻하고 포근한 대지의 기운이 냉이된장국 한 국자에 듬뿍 담겼다.
냉이된장국을 먹다 보니 떠오르는 요리가 있었다. 중국 향토 요리인 옌두셴이다. 소금에 절인 삼겹살과 봄 죽순을 질그릇에 넣고 물을 부어 뭉근하게 끓인 탕이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삼계탕처럼 구수하고 진하다.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사람들은 봄맞이 보양식으로 집에서 옌두셴을 만들어 먹는다. 몇 년 전에는 중국 CCTV의 유명 미식 프로그램인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에 소개돼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냉이 대신 죽순이 봄소식을 전한다. 중국에는 볶음부터 탕까지 죽순으로 한 요리가 많다. 죽순은 연하면서도 식감이 아삭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도 효과적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봄 죽순을 먹으면 한동안 고기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죽순은 대나무의 땅 속 줄기에서 돋아난 어린 싹인데 봄이 제철이다. 우후죽순이라는 사자성어처럼 금방 자라나 대나무가 되기 때문에 싹이 난지 열흘 안에 채취해야 한다. 열흘에 해당하는 초순, 중순, 하순 구분도 죽순이 자라는 시간에서 유래했다.
옌두셴은 지난해 봄 상하이 와이탄에 있는 페어몬트피스호텔에서 처음 맛봤다. 4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드래건피닉스는 계절마다 특별한 향토 요리를 내놓는데 봄철에는 옌두셴을 빼놓지 않는다. 상하이 토박이인 마하오청 셰프의 고집이다. 코스로 주문한 음식 중에는 소고기 스테이크, 고급 생선 요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옌두셴이다. 절인 삼겹살로 우린 육수는 느끼함과 잡내가 전혀 없고 담백했다. 고기 조직은 오래 삶았어도 퍼지지 않았다. 죽순에는 특유의 아삭함이 살아있었다. 냉이와 된장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건강하고 산뜻한 맛이었다.
옌두셴은 평범하고 단순한 요리지만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았다. 비결은 죽순이다. 삼겹살이 들어가지만 옌두셴의 깊은 국물 맛은 고기 육수가 아니라 봄날의 죽순에서 나오는 것이다. 냉이된장국을 끓이며 옌두셴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 움튼 뿌리채소의 맛, 생동하는 대지의 맛이었다.
도선미 여행작가 dosu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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