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 '슈퍼리치' 앞에 덩칫값이 무색해…차별화 전무(全無)

입력 2017-03-21 15:05   수정 2017-03-21 15:33

[ 김은지 기자 ]

답보 상태에 놓인 '슈퍼리치 경쟁'에 자산관리를 기치로 내건 국내 초대형 증권사들의 명함이 무색해졌다.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정작 자산관리의 꽃인 VIP 영업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고객 이탈도 염려되고 있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에 10억원 이상을 예탁한 VIP 고객 수는 작년 말 기준 1만293명으로 1년 전인 1만1956명과 비교해 1663명(13.9%) 줄었다. 이 숫자는 올해 들어 더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시너지는 묘연해졌다. 2014년말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의 합병으로 VIP고객 수는 2014년 8450명에서 이듬해 1만1956명으로 늘었지만 이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M&A로 몸집을 불려 자기자본 1위(6조7000억원)로 뛰어올랐지만 VIP 고객 성적표는 NH투자증권보다 못하다. 지난달 말 기준 미래에셋대우에 10억원 이상을 맡긴 VIP 고객 수는 9643명으로 자기자본 2위(4조6000억원)인 NH투자증권을 소폭 밑돈다.

고객자산 규모를 따져봐도 업계 1위란 타이틀에 아쉬운 성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고객자산 규모는 미래에셋대우가 230조원, NH투자증권이 200조원이다.

KB증권도 덩칫값을 못하긴 마찬가지다. KB증권은 지난해 현대증권을 인수해 자기자본 3위(4조1000억원)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예치금 10억원 이상 VIP 고객 수는 이달 중순 기준 2480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작년 말 2399명에서 3.3% 증가했다.

증권사에서 VIP 고객이 중요한 이유는 VIP 영업이 '리테일+자산관리'의 집약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역량을 키우기 쉽지 않은 증권사로서는 리테일과 자산관리를 빼면 규모 확장이 어려운 탓도 있다.

이에 올해 초대형사로 도약해 업계 재편을 예고한 증권사 경영진들은 자산관리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는 신년사에서 "그간 누려왔던 외형 1위의 이점이 사라지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며 "안정적인 자산관리 수익을 기반으로 다른 사업부문이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경은, 전병조 대표도 통합 KB증권 출범식에서 "자산관리 부문과 기업투자금융(CIB) 부문을 양대 축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 또한 올해 자산관리와 IB를 융합한 IWC센터를 신설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산관리 역량을 펼쳐보여야 하지만 모두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차별화를 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수료 및 금리 우대, 골프 강좌, 문화 행사 등을 비롯해 부동산·세무 분야의 컨설팅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수수료 인하에 치우쳐 제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이 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자산규모가 큰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를 깎아주다 보니 10억원을 맡긴 고객보다 1억원을 맡긴 고객에게 받는 수수료가 더 클 때도 있다"며 "수익률이 뛰어나거나 차별화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회사 '이름값'에 기대 VIP 영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보 인프라의 발달로 자산가들이 때로는 증권사 직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모펀드의 결성 등으로 VIP 고객들이 기관에 준하는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증권사가 보다 전문성, 창의성을 길러 고객에 맞춘 포트폴리오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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