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기 꺾은 미래부·KISA의 '오락가락 행정'

입력 2017-03-23 19:33  

현장에서

시중은행 전자등기 발주 입찰
핀테크 업체 '피노텍' 제치고 공인인증서 권고 무시했던 무역협회 자회사 KINET 선정

위법이라 했던 미래부·KISA 입찰후 돌연 "문제없다" 말바꿔
법 지킨 벤처만 애꿎은 피해



[ 이호기 기자 ]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갈지자(之) 행정’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사업 의욕을 꺾어 빈축을 사고 있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근저당권 설정을 위한 전자 등기를 할 때 고객 위임을 받은 은행 측 법무사가 공인인증서(유효기간 15일)를 대신 발급받아 서명까지 해온 관행에 미래부와 KISA 측은 당초 위법 소지가 있다고 결론냈지만 얼마 안 가 이를 뒤집었다. 이 때문에 국내 대표적인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 중 한 곳이 시중은행의 전자 등기 솔루션 수주전에서 탈락하는 피해를 입었다.

스타트업 피노텍은 지난 1월 끝난 한 시중은행의 전자 등기 솔루션 입찰에서 미래부와 KISA의 법 해석에 따라 공인인증서 대리 발급 과정이 필요 없는 비대면 인증 기술을 제안했지만 탈락했다. 은행 측이 법무사가 해당 고객의 공인인증서를 대신 발급받은 뒤 전자 등기를 할 수 있는 기존 시스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행 부동산등기법은 법무사 등 대리인이 본인의 위임을 받아 등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인인증서의 본인 발급 및 서명을 원칙으로 하는 전자서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프라인에서 등기 업무를 위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인터넷 금융 거래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공인인증서가 통째로 타인에게 넘어가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전자 등기 사업을 확대하고 싶었던 대법원도 이에 주목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7월 미래부와 KISA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은행에서 대출신청서나 개인정보제공동의서 등 각종 서류와 함께 뭉뚱그려 고객 위임 동의를 받은 뒤 법무사가 자신의 PC에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아 전자 등기에 사용하는 행위는 위법하다고 결론냈다”며 “다만 공인인증 관리감독 기관은 미래부와 KISA여서 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KISA도 작년 12월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금지하는 가이드라인 초안도 마련해 미래부에 보고했다. 공표에 앞서 인증업체에는 해당 업무를 자제해달라고 권고했다. 한국정보인증 등 대다수 공인인증업체는 곧바로 해당 업무를 중단했지만 유독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은 달랐다. KTNET은 한국무역협회의 100% 자회사로 관례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1급 이상 관료 출신이 사장을 맡아왔다. KTNET 측은 “시스템 변경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을 끈 이유는 따로 있었다. KTNET은 피노텍과 함께 은행 전자 등기 솔루션 입찰에 참여했다. 이 입찰에서 KISA의 권고를 따른 피노텍은 떨어진 반면 공인인증서 위임 발급을 고수해온 KTNET 측이 수주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은행 측은 “KISA 권고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해석했다. 미래부도 KISA 가이드라인 초안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미래부 관계자는 “공인인증서 위임 발급 및 서명이 현행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며 “보완이 필요하다면 부동산등기법을 관할하는 대법원(법원행정처)이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피노텍 대표는 “정부가 말로만 ‘핀테크 육성’을 외치지만 뒤에서는 은행 공기업 등 기득권 편을 들고 있다”며 “헌법소원이라도 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호기 IT과학부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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