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출발은 정확한 단어의 선택에 있다. 문장의 의미를 구성하는 기본단위가 단어이기 때문이다. 단어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의미’를 드러내는 기표(틀)다. 대충 써도 모국어 화자끼리 뜻이야 통하겠지만, 정교함이나 논리성은 갖추지 못한다. ‘정확한 단어의 선택’이 글의 품질로 연결되고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성패를 좌우하는 밑바탕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확한 단어의 선택은 글쓰기의 출발
대표적인 게 ‘사저(私邸)’의 오용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2일 저녁 청와대를 나와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저’와 ‘자택’을 구별해 쓰던 한국경제신문은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이 ‘자택’으로 돌아간 소식을 전했다. 이에 비해 다른 언론들은 대부분 ‘사저’를 썼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15일 당 연석회의에서 “의미상으로 사저는 맞지 않는다. 자택이라고 하는 게 옳다”며 “작은 것이지만 우리 당부터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후 일부 언론이 ‘자택’으로 바꿔 쓰면서 언론 보도에는 사저와 자택이 함께 나오고 있다.
‘사저’는 글자 그대로 풀면 ‘개인 소유의 아주 큰 집’이다. 그런데 개인이라 하더라도 아무에게나 쓰지 않는다. 공인(公人)에게 쓰는 말이다. 공인 중에서도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고위 관리에게는 관저(官邸)가 나오는데, 이 관저에 상대하여 사사로이 거주하는 주택을 사저라고 한다. 그러니 ‘사저’는 관저가 있는 사람의 개인 주택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당연히 퇴임한 사람에게는 관저가 따로 없으니 사저라는 말도 적절치 않다. 그냥 집 또는 자택이라 하면 충분하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일반인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에게 ‘사저’란 말을 쓰는 배경에는 두 가지를 생각할 만하다. 하나는 단어의 정확한 용법을 모르고 무심코 쓰는 경우다. 또 하나는 높은 사람에게는 한자말을 쓰는 게 격이 있어 보인다는 그릇된 언어 인식 때문이다. 둘 중 하나이거나 두 가지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대충 쓰는 태도가 우리말 발전에 장애물이 된다는 점이다.
민간 회사에 ‘면접관’은 어색해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는 이처럼 잘못 쓰는 게 꽤 많다. ‘관(官)’과 관련한 용어로, ‘면접관’도 그중 하나다.
“면접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종합계획, 사업 등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꼭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라고 해야 합니까? 외국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쓰는 것 아닌가요?” 지난해 4월 KBS 1TV에서 방영한 ‘안녕 우리말’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당시 걸스데이의 멤버 ‘민아’가 출연진으로 나와 외국어를 남용하는 세태를 꼬집은 상황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에 옥에 티가 있었다.
면접관에서 ‘-관(官)’은 ‘공적인 직책을 맡은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감독관’을 비롯해 ‘경찰관, 법무관, 사령관, 소방관’ 같은 데 쓰는 말이다. 모두 정부 관리 따위를 말할 때 쓴다.
뒤집어 말하면 민간 기업의 직책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는 말이라는 뜻이다. 민간 회사의 사원 채용기사를 보면 ‘면접관’이란 말이 많이 보인다. 민간인에게 ‘OO관’이란 표현을 쓰면 어색하게 느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면접담당자’나 ‘면접위원’ 등 다른 적절한 말을 찾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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