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과 함께하는 라이프디자인<192> 자식들의 '경제적 학대' 막을 노후 안전장치 마련해야

입력 2017-03-26 15:35  

작년 말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가해자는 미국의 유명한 의대 교수이고 피해자는 치매에 걸린 노모다. 노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암 투병을 하면서도 아들에게 유학 공부에 매진하길 당부했고 재산 증여도 약속했다. 이후 노모는 우울증과 치매를 앓게 됐고 국내에 있던 세 딸의 도움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면서 노모는 재산을 딸들에게도 나눠주겠다는 자필 유언장을 새로 작성했다. 그러자 아들은 약속한 재산을 달라며 증여증서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사문서를 위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증자가 증여자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증여자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때 증여계약을 해지(민법 제556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노모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노부모 등에 대한 경제적 학대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적 학대라는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에 이 이슈에 둔감하거나 스스로 경제적 학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경제적 학대란 고령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재산이나 경제권을 빼앗거나 의사결정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별로 경제적 학대의 개념과 범주는 다르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있는데다, 앞선 세대에 비해 현세대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경제적 학대가 늘어날 개연성이 높아졌다.

미국인 가운데 백인, 흑인, 한국계, 중국계, 일본계의 경제적 학대 인식 수준을 조사한 결과 한국계 미국인이 경제적 학대에 대해 인식하는 수준이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는 형편이 좋지 않아도 부모가 자녀의 양육비, 결혼 자금 등을 지원하는 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봐 부모로서 당당히 요구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자칫 부모로서 자신의 경제적 권익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경제적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자 삶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신의 몫’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산이 자신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필요한 장치를 만들어 둬야 한다. 대표적인 게 연금이다. 연금은 아프거나 나이 들거나에 상관없이 조건이 충족되면 개시돼 지속적으로 현금흐름을 유지해 준다. 금융회사도 고령층 고객이 스스로 자산을 지키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니어 고객 지원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최은아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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