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이 다시 증시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트럼프케어'의 표결 처리가 무산되면서 향후 트럼프 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그간 주가의 모멘텀(동력)이던 기대감이 단기 조정의 빌미로 둔갑한 셈이다. 하지만 가을걷이를 위해선 '조정 시 매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첫 번째 위기 '트럼프 정책'…"조정와도 깊지 않을 듯"
27일 오전 코스피(KOSPI) 지수는 2150선까지 밀려났다. 지수는 지난주 중반 이후로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주초반 장중 한때 2180선을 돌파해 연고점을 다시 쓰기도 했지만, 이내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2170선마저 내줬다.
미국에서 주가 악재가 들려온 탓이다. '트럼프케어'가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향후 트럼프 성장정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외국인은 실제로 3월 들어 처음으로 지난주 매도 우위(일평균 기준)를 나타냈다. 외국인은 이달 첫 거래일부터 지난 19일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 날마다 '사자'를 외쳐왔다.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미국 하원이 상정했던 오바마케어 대체법안(트럼프케어)의 표결 무산은 트럼프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높였다"면서 "트럼프케어는 바로 지난 2월 트럼프가 항공사 CEO들과 만나 언급한 '깜짝 놀랄 만한 세제개혁안'의 선결 조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은 분명히 증시에 악재다. 하지만 대내외 경기지표를 감안하면 조정의 폭이 깊지 않을 것이란 게 이 연구원의 전망이다.
이 연구원은 "주가 상승 모멘텀이 일시적으로 사라졌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기선행지표의 반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게다가 국내 수출 경기가 개선되고 있고 중국의 수출 역시 반등 조짐이 보이고 있어 주변 상황은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조정 폭이 예상보다 크다면 '분할 매수'의 기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 두 번째 '4월 환율보고서'…"환율조작국? 지금은 없다"
4월에 나올 미국 재무부의 반기 환율보고서가 '4월 위기설'의 두 번째 이유로 꼽힌다. '원화가 저평가됐다'는 내용을 담게 될 이 보고서의 공개 이후 달러화 대비 원화의 강세 압력이 높아지고 정보기술(IT) 등 국내 수출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박형중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반대로 환율보고서 발표 이후부터 약달러 압력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국가가 현재 기준으로 없기 때문에 설사 지정되는 국가가 나오더라도 그 영향은 단기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무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의 BHC 수정 조항(Bennet-Hatch-Carper Amendment)을 통해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 형식적인 절차로 지정될 수 없다는 얘기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촉진법의 BHC 수정 조항의 경우 미국이 특정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면 최근 12개월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고, 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웃돌아야 하는 데다 외화순매입 규모도 GDP의 2%를 넘어야 한다"며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미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법조항을 따른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트럼프가 법 위반을 감수하면서까지 특정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중국 일본 독일 등 상대하기 벅찬 나라보다 대만 한국 등을 겨냥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부담(의회와 대립·법률 위반)이 상당해 결과는 미지수"라고 관측했다.
◆ 세 번째 리스크 '유럽의 정치 불확실성'…"걱정스럽지 않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개시와 프랑스 대선(1차) 투표 등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4월 위기설의 또 다른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가결과 트럼프 당선 등 그간 테일리스크(꼬리위험)의 경험을 통해 경계심리를 늦춰선 안 될 사안"이라면서도 "유럽 주요국의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거나 유로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어 유럽의 정치 상황이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라고 분석했다.
김정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다음달 23일로 예정된 프랑스의 1차 대선 투표를 앞두고 유럽연합(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하며 프렉시트(Frexit)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며 "프렉시트는 (파운드를 사용하는)브렉시트보다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데 유로화 가치 급락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국채 금리 급등이 달러 강세와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르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며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4월23일에 과반수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2위 후보를 놓고 5월7일 결선(2차) 투표를 진행하는데 르펜 후보의 지지율이 과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차 투표에선 친 EU 성향을 가진 중도 진영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오히려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1일 첫 프랑스 대선 후보 TV 토론 이후 불확실성이 사그라들고 있다"면서 "이날 이후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상승했으며 프랑스의 국채 수익률도 보합으로 안정세를 되찾았다"고 덧붙였다. 유로화 역시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9일 브렉시트 협상 시작을 알리는 리스본조약 50조가 발동된다. 영국이 EU에 이 브렉시트 협상 서한을 제출하면 EU는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들에게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브렉시트의 최종 승인까지는 '회원국의 가이드라인 승인'→'EU 집행위원회 및 영국 대표와 협상'→'유럽 의회 동의(27개국 중 20개국 찬성·20개국 인구가 EU 인구의 65% 이상)'→'최종 승인 또는 협상 연장' 등 단계를 거쳐야 한다.
메이 총리는 다음 EU 의회 선거가 열리기 전인 2019년 초까지 협상을 끝낼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2년 안에 이 협상이 타결될 지에 대해 시장은 '미지수'로 보고 있다. 한 마디로 브렉시트는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고 장기전을 간과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네 번째 '1분기 실적시즌'…"저평가 매력은 기대 이상"
올 1분기(1~3월) 상장기업들의 이익 추정치 하향 가능성도 '4월 위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연초부터 계속된 원화의 강세로 인해 수출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꺾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2017년 1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3월22일 기준)은 1157원. 이는 전년 동기의 원·달러 환율(1201원)에 비해 상당한 강세다. 특히 4월 환율보고서 발표와 미국의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 탓으로 당분간 원화의 강세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형 수출주 위주로 올라온 주가와 실적에 부담인 것이다.
류용석 KB증권 시장전략팀 연구원은 그러나 "1분기 실적 시즌을 앞두고 아직까지 기업 실적의 개선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면서 "3월말부터 4월초에 '마찰적 조정'이 나오더라도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퀀트전략 연구원도 "1분기 실적 마감을 앞두고 있지만 이익 전망치는 분명히 상향 조정되고 있다"며 "1분기의 경우 경험적으로 이익 전망치의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 1분기 영업이익(유니버스 200종목 기준)은 작년보다 20.8% 증가한 42조9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며 "설령 이 전망치를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사상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이 40조원을 넘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현 연구원 역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차원에서 국내 증시의 저평가 매력을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 대비 신흥국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2016년 연초를 저점으로 우상향 추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신흥국의 주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그 중에서도 한국 증시의 12개월 선행 EPS는 신흥국 대비로도 뚜렷한 우상향 추세라서 저평가 매력이 충분하다"라고 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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