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토리] 길고양이 중성화 동행기‥공존의 대가

입력 2017-03-27 15:49   수정 2017-03-27 16:52

[스몰 스토리] 공존

길고양이의 '지속가능한 삶'



#영상 연대 길고양이를 만나보세요


지난 17일 오후 1시 연세대생 4명이 분주한 교내를 뒤로 하고 뒷산 공터로 모였다. 남자 둘에 여자 둘.

미팅은 아니었다. 이들 앞엔 1미터 크기 갈색 철장이 있었다. 승합차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10여 분간 학생들에게 철장 쓰는 법을 능숙하게 선보였다.

?철장 사용법은 이랬다. 먼저 철장 앞문을 고리로 걸쳐 고정하고 세번 크게 접은 신문을 철장 바닥에 깔았다. 바닥 가운데를 살짝 누르자 고정시킨 문이 ‘철컹’하고 닫혔다. 철장이 재깍 반응하는지 확인 후, 일회용 숟가락으로 통조림 먹이를 한 숟갈 퍼 세번에 나눠 신문에 덜었다. 끝으로 뒷문을 열어 남은 통조림을 담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놓았다. 누가봐도 미끼였다.


비릿한 향을 풍기는 미끼를 먹을 손님은 길고양이들. 철장은 고양이 전용 포획틀이다. 이들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와 연세대 길고양이 보호 동아리 ‘연냥심(연세대 냥이는 심심해)’으로 교내 길고양이 ‘TNR’ 지원사업을 위해 모였다. TNR은 포획(Trap), 중성화(Neuter), 방사(Return)를 뜻하는 국제 공용어다. 불임 수술을 통한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주목적으로 한다.

포획틀 준비가 끝나자, 저마다 손에 틀을 든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근 뒷산부터 교내 건물 사이사이 틀을 설치했다. 준비는 끝났다. 고양이가 틀에 들어와 통조림에 입을 대기만 하면 됐다.

야행성 동물인 고양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틀 설치장소를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기다린지 약 한 시간. 학생 한 명이 급하게 담요 두 개를 집어들고 뛰기 시작했다. 그를 쫓아간 곳엔 고양이 한마리가 틀안에 갇혀 날뛰고 있었다. 학생은 카라 활동가들과 함께 재빠르게 틀 위로 담요를 덮었다. 고양이는 이내 얌전해졌다. 고양이는 위헙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어둠을 찾는다. 사방에 빛이 차단되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낀다.

담요를 들고 온 학생이 네임팬을 꺼내들어 철장에 붙은 표 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포획일 2017년 3월 17일, 포획시간 14:33, 포획장소 연세대, 특이사항 이름: 쿠앤크.

학생들은 다 아는 이름이다. 쿠앤크처럼 교내 길고양이 38마리에게 학생들은 이름을 지어줬다. '쿠앤크'는 검고 하얀털이 쿠키 앤드 크림(Cookies and Cream) 아이스크림을 닮아서 붙여졌다. '치즈’, ‘뽀또’, ‘채플린’ 등도 있다. 처음 보는 고양이가 나타날 때마다 해왔다.

집고양이만 이름이 있으리란 법은 없다. 김춘수의 시 <꽃> 속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구절처럼 말이다. 이름은 존재를 드러낸다. 존재하면 기억된다. 기억하다 보면 의미가 되는 법이다. 고양이 쿠앤크를 차량에 실은 전진경 카라 이사는 “학생들이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다른 학생들이 현장을 찾았다. 이 날 TNR 활동에 참여한 학생은 11명. 저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손을 거들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현장을 지킨 한 학생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졸업을 앞둔 학생은 “상반기 취업준비로 바쁘지만 작년부터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며 “학교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마다 이름과 사연을 알게 되니 더 돕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5학년이라 소개한 다른 학생도 “힘든 취업활동 중에 학교에서 고양이를 봤다”며 “올 추운 겨울을 버틴 고양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

쿠앤크는 이 날 밤 TNR 협력 동물병원으로 옮겨졌다. 중성화수술 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물론 기존에 앓고 있던 질병도 치료했다. 지난 25일 연냥심 학생은 쿠앤크가 건강하게 학교로 돌아왔다고 알려왔다.

연냥심 동아리의 전신은 ‘광복관 고양이 조용히할개오(광복관고양이)’다. 작년 6월, 울음소리가 교내 면학 분위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겨날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광복관은 교내 법학 강의를 주로 하는 건물로 고양이가 많은 뒷산 앞에 있다. TNR은 면학 분위기에 민간함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보호하고픈 학생들이 건넨 최선책이였다. 주로 고양이 울음소리는 발정기나 교미 중 발생한다. 중성화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 또 한번 포획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현장에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틀에 머리를 반쯤 넣은채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포획까지 두세 발걸음만 남긴 상태였다. 5분여간 들어갈까말까 고민하던 고양이는 결국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다. ‘철컹’소리가 난 뒤 ‘아’ 짧은 탄식음이 들렸다. 이미 중성 고양이였다. TNR된 고양이는 왼쪽 귀 끝을 0.9cm 자른다. 중성화 후 구분이 힘든 암컷이나, 이미 수술받은 고양이를 불필요하게 병원에 데려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국제적 약속이다. 검은 고양이는 밥만 잘 먹고 돌아갔다.



TNR이 주목받는 이유는 고양이가 영역동물이라서다. 쿠앤크가 없어지거나, 약해지면 다른 지역 고양이가 쿠앤크 영역을 차지한다. 그저 무분별한 포획과 중성화 수술만으로 길고양이 수를 줄여봤자 일시적 감소할 뿐이다. 중성화수술 후 건강하게 돌아오지 못해도 말짱 도루묵이다. 쿠앤크도 수술 후 맛있게 세끼를 먹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학교로 돌아왔다. 많은 동물 애호가들이 일부 지자체식 중성화에 의문을 던지는 이유다.

TNR에 대한 반감도 있다. 길고양이 생태계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카라 측은 “이미 인간이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길고양이가 살아가는 일은 벅차다. 사람과 함께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TNR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중 최선”이라 말했다.

캄캄한 저녁 8시. 승합차에 이날 포획된 6마리 고양이를 실으며 활동이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다음 날 있을 병원 방문 일정을 조율 중이었다. 잡아서 병원에 보내는게 끝은 아니었다. 결국 TNR 사업에 핵심은 고양이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제공하냐에 달렸다. 관리없는 불임수술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쪽만을 위해 한쪽이 고통받는 일은 ‘공존’이 아니다.

이날 포획틀 교육부터 동물병원 이송까지 함께한 카라 한혁 활동가는 “TNR을 하는 이유도 결국 인간과 고양이가 도시에서 같이 살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이 번식을 인간이 억제한다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생식기 질환 및 발정 스트레스 등을 줄여 고양이 평균 수명을 늘리는 효과도 분명 있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더했다.

카라는 올해 강원대, 건국대, 국민대, 고려대, 삼육대, 서울과기대, 연세대, 중앙대 등 대학 주변 300여 마리 길고양이 대상 2번 TNR 및 돌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몰스토리 ? 소담(小談), 작은 이야기입니다. 작아서 주목받지 못하거나 작아서 고통 받는 우리 일상을 담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가치의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뉴스래빗 스토리랩의 일환입니다 !.!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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