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본격 온천 개발
1970~1980년대 대표 신혼여행지
1973년 본격 연구단지로 선정
한국 과학 전초기지로 부상
유성구 주민 평균연령 35.6세
전국서 다섯 번째로 젊은 도시
'부채 제로' 자치구 경쟁력 3위
"인구 40만 중핵도시로 급성장"
[ 임호범 기자 ] 민족의 영산 중 하나인 계룡산 자락, 대전 유성구 갑동에 있는 도덕봉(534m)에 오르면 과학·관광(온천)·주거 단지가 어우러진 유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유성구의 중심인 유성사거리에서 충남대 정문까지 1㎞ 거리에는 ‘온천’ 간판을 단 60여개의 숙박시설이 늘어서 있다. 북쪽으로는 대덕테크노밸리(427만㎡)가, 중심 하천인 갑천 북서쪽으로는 1993년 열린 엑스포 행사장과 26개의 정부출연연구소가 대학 캠퍼스처럼 조성돼 있다. 세종시 쪽으로는 노은동 죽동 도안동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유성온천은 1451년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에 처음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엔 태조와 태종이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진다. 유성 온천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1989년 출범한 유성구의 11개 행정동 중 2개 동(온천1동, 온천2동)에 온천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지금도 유성하면 온천이다. 정부는 1970~1980년대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였던 유성을 1994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매년 5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의 산실
온천도시가 과학도시로 바뀌는 큰 그림이 처음 그려진 것은 1973년이다. 그해 1월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서울 홍릉연구단지를 넘어서는 제2의 연구단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선박 기계 석유화학 전자 등의 전략산업 연구기관을 단계적으로 설립하고 서울에 산재해 있는 국·공립 연구기관을 한곳에 집결시켜 연구 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4개월 뒤 박 대통령은 연구단지 건설을 지시했고 같은 해 11월 정부는 충남 대덕군 일대(현 유성구)를 교육·연구지구로 결정했다. 1978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입주를 시작으로 연구원이 속속 들어섰다. 1993년에는 대덕연구단지 일대에서 대전 엑스포가 열렸다. 정부는 2005년 연구·교육 중심의 대덕연구단지를 비즈니스 중심의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로 지정했다.
40여년간 대덕특구의 국내 특허 출원 수는 2015년 기준 11만6998건, 해외 출원도 5만7273건에 달한다. 코스닥 등록 기업도 매년 30개 이상 나온다. 유성 토박이인 여성용 케이자산관리 대표(54)는 “온천밖에 없었던 평범한 농촌 유성이 과학도시가 되면서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뤘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 미진입 ‘젊은 도시’
2016년 기준 유성구 주민의 평균 연령은 35.6세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다섯 번째로 젊은 도시다. 기초지자체 중 아직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도시는 대전 유성구와 울산 북구뿐이다.
재정도 탄탄하다. 2015년 7월 지방채 원리금 25억8700만원을 전액 상환한 이후 지금까지 ‘부채 제로’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유성구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한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KLCI) 조사에서 전국 69개 자치구 중 서울 강남구, 부산 강서구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유성구의 청사진도 ‘젊음’과 ‘문화’가 핵심이다. 유성구는 183억원을 들여 2019년까지 신성동에 2만2054㎡ 규모의 유성종합스포츠센터를 준공할 계획이다. 대전 내 최대 규모다. 143억원을 투입하는 원신흥동 도안복합문화도서관 건립공사도 내년 하반기 마무리된다. 허태정 유성구청장은 “유성지역은 인구 40만명 규모의 중핵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도시의 양적팽창과 더불어 지역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민들이 행복한 매력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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