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동의하자니
'최순실 트라우마'로 책임론 우려
동의 안 하자니
"P-플랜 땐 10%도 못 건질 수도"
"손실 최소화가 최선이지만 여론 무시 못 하는 게 문제"
[ 김일규 / 이태명 기자 ]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사학연금 등 대우조선해양 채권자들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신규자금 지원 선결 요건인 기존 채권 손실분담 합의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실분담 합의가 없으면 법정관리(P-플랜) 절차를 통해 더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임 문제 등으로 누구도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심리적 압박 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임이론 ‘죄수(罪囚)의 딜레마’ 같은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 회사채 조정안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공단은 28일 첫 실무회의를 열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 회사채(1조3500억원)의 약 28.9%(3900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추가 검토를 거쳐 투자관리위원회와 투자위원회를 통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열린 대우조선 채권은행 회의에 참석한 시중은행들도 큰 틀에서는 채무조정에 동의했지만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추가 감자(자본금을 줄임), 은행 간 선수금환급보증(RG) 분담 비율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우조선 실사보고서를 본 뒤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며 “동의하더라도 회사채 투자자들이 채무조정에 참여해야 은행도 참여한다는 조건부 동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앞서 대우조선 회사채·기업어음(CP) 투자자는 보유채권의 50%를, 시중은행은 무담보대출의 80%를 출자전환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대우조선을 P-플랜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P-플랜은 법원이 부실기업 채무를 강제적으로 재조정한 뒤 채권단이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새 구조조정 제도다.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갈 경우 법원은 모든 채권자의 공평한 손실 분담에 중점을 두고, 청산 가치에 준하는 대규모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을 할 계획이어서 시중은행과 사채권자(社債權者)의 원금 손실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우선 출자전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출자전환 뒤 현금화 가능성도 떨어진다. 거래 정지 상태인 대우조선 주식의 거래재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P-플랜으로 간다면 채권자들은 원금의 10%도 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등이 선뜻 손실분담에 동의하기 힘든 것은 ‘최순실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후 ‘국민 노후자금을 삼성 지원에 썼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시중은행도 먼저 부담을 짊어졌다가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별 채권기관이 어떻게 하면 채권손해율을 줄일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 의사결정하는 게 최선인데 현실적으로 여론 비판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문제”라고 말했다.
■ 죄수의 딜레마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는 상황.
김일규/이태명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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