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헤어밴드'만 써도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입력 2017-03-29 21:23   수정 2017-03-31 11:41


인간의 뇌는 용량이 2l 밖에 안된다. 처리 속도는 최신 CPU에 한참 못미친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슈퍼컴퓨터보다도 빠른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다. 뇌과학과 유전자 분석 등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복잡한 최신 기술을 총 동원해도 뇌는 상당부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뇌가 아프면 무섭다. 해결책도 많지 않다. 팔이 없으면 로봇 팔로 대체가 되지만, 자폐증은 왜 걸리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누구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제는 ‘뇌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흔해진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하루 평균 30명 이상이 자살하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중 부동의 자살 1위 국가지만 이를 개선할 획기적 방법은 없다.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정신과는 찾기가 부담스럽고 약물은 부작용이 무섭다.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은 뇌신경과학과 하드웨어 기술을 결합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와이브레인의 ‘마인드(MINDD)’는 2017년3월 국내 최초로 우울증 치료를 위한 보조의료기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집에서 쉽게 우울증을 치료한다.

‘마인드(MINDD)’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기기다. 머리띠처럼 생긴 헤드셋을 쓰면 전기 자극이 가해져 우울증을 완화하는 식이다. 일반인들이 얼핏 볼 때는 진짜일까 싶을 정도로 생소하다. 그러나 이 기기는 국내에서 96명의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종료했고, 식약처가 3등급 의료기기로 품목허가한 제품이다. 사기는 아니란 얘기다.

우울증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는 인지와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고 감정 중추인 편도체의 활동이 과도해지는 것이다.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고 감정조절이 어려워진다. ‘마인드’는 전기자극을 통해 이런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기기다. 우울증 치료로는 주로 상담과 약물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상담은 치료 경과를 분명히 파악하기가 힘들고 약물은 성욕저하 등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이기원 대표는 KAIST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받았고 삼성전기에서 스마트폰 내 메모리반도체 부피를 최소화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연구원이었다. 같은 KAIST에서 뇌과학을 전공한 채용욱 씨 등 3명이 2013년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공동창업자 셋 중 둘이 회사를 떠났고 현재 이기원 대표만 남아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줘서 치료하는 방법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됐다. 이 대표는 “1890년대부터 있었던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간단히 살펴보면 가장 오래된 치료방법은 전기충격치료(ECT)다. 영화에 종종 나오는 입에 뭔가를 물고 머리 양옆에 전기충격기 같은 걸 대서 치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치료는 400V의 강한 전기자극을 준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 등 중증 치료에 많이 쓰는데 단기 기억상실 등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좀 더 진화된 형태가 전자기 코일로 자기장을 일으켜 환자의 뇌를 활성화 하거나 억제하는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치료법이다. 미국의 뉴로스타라는 기업이 FDA 승인까지 받았고 병원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기가 비싸고 덩치가 커서 병원에 가야만 쓸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한번 치료를 받는데만 30만~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한 의학 전문가는 “TMS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고 효과를 입증한 논문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정신과 현장에서는 여전히 치료 효과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TMS보다 한단계 진화한 것이 와이브레인이 쓰고 있는 tDCS(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방식이다. 치료효과는 비슷하나 자기장 대신 전기를 쓴다는 점이 차이다. 전기를 쓰면 소형화가 가능하고 전기자극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더 효율적이라고 이 대표는 했다.

tDCS 치료방식 자체는 와이브레인이 개발한 건 아니다. 와이브레인의 강점은 tDCS 방식을 바탕으로 간단하면서도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두루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어떤 연구를 했느냐 보다는 그 연구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편하게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 한 것이 와이브레인 ‘마인드’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기기 사용은 매우 간단하다. 머리에 두르는 띠가 하나 있고 치료 결과를 알려주는 대시보드 같은 게 하나 있다. 띠를 두르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 대시보드에는 작은 동글(dongle: 컴퓨터 등에 연결하는 작은 하드웨어)이 있다. 데이터는 여기에 저장된다. 환자는 집에서 치료를 하다가 이 동글만 가지고 병원에 가면 치료 경과에 대해 의사와 상담을 할 수 있다. KAIST 박사면 평생 먹고 살만한 학력은 갖췄다는 얘기다. 이 대표도 삼성에서 핵심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이 대표는 “석사 박사 과정과 대기업을 거치면서도 항상 내 기술이 많은 사람에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갈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를 만든 계기는 지금은 나간 2명의 뇌과학 쪽 전문가들이 이 대표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다. 이들은 tDCS 방식을 잘 활용하면 우울증이나 치매 등의 치료에 획기적인 개선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계 분야에서는 약점이 있었다. 이에 재료공학박사인 이 대표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창업자 둘이 회사를 나간 것에 스토리에 대해 이 대표는 말을 아꼈다. “몰랐는데 사회 생활은 그렇더라” 정도로 대신했다. 기자는 나중에 창업멤버 중 한명을 만났는데 그도 “스타트업에서 종종 벌어지는 그런 일” 정도로만 말했다.이 대표는 “많은 노력을 통해 뇌공학,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사업 전략과 세일즈 등 모든 면에서 균형잡힌 팀을 만들었다”며 “하버드 출신 뇌공학자이면서 실리콘밸리 창업 경험이 있는 William J. Tyler 미국 법인 멤버,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김성훈 CIO(최고정보책임자), 버클리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고 AT커니에서 일한 심현보 CSO(최고전략책임자), 의학 쪽을 맡고 있는 전문의인 이승우 이사, 존슨앤존슨 출신의 영업담당 김민규 이사 등 어느 스타트업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막강한 멤버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와이브레인은 2013년 창업 이후 처음엔 초기 치매 치료를 목표로 기기를 개발했다. 약한 치매, 의학적 용어로는 ‘경도인지장애’도 이 방법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우울증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시적인 목표를 먼저 달성하기 위해서”였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우울증 관련 임상은 2015년부터 시작했다. 96명 대상의 국내 임상에서 6주 동안 와이브레인의 기기를 썼을 때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이 경증으로 개선됐다. 현재 국내 7개 병원과 별도의 임상을 수행중이며 상반기 중 유명 의학 저널에 게재하는 게 목표다.

시장 규모는 충분히 크다는 게 와이브레인의 설명이다. 현재 국내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만 약 60만명,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5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훨씬 시장이 크다.

◆연말부터는 일반인에게도 판매하는 것이 목표

비슷한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8개 정도 된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 중에서는 와이브레인이 후발주자인데, 그만큼 다른 회사의 단점을 보완해 디자인이 세련되고 사용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식약처에서 시판 허가를 받아 기기 판매를 시작했다. 연말이나 내년 초 신의료기술 등재와 보험수가 심사가 완료되면 병원과 환자의 사용이 확대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수익모델은 일단 기기판매다. 기기는 대당 3000만원쯤 한다. 올해 50개 병원에 납품하는 것을 목표다. 머리띠에 붙이는 패치 등은 소모품이어서 일단 기기를 납품하면 꾸준히 판매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소프트웨어도 간단한 업그레이드는 무료로 진행하지만, 대규모 업데이트는 유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환자의 병원 연계 재택 치료를 위해서 렌탈 비즈니스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골프존 그룹의 든든한 후원

이 회사는 2015년8월 큰 전환점을 맡게 된다. 선뜻 이해가 안되는 조합이지만 스크린골프장 운영업체로 유명한 ‘골프존유원홀딩스’가 와이브레인에 거액의 투자를 해 이 대표에 이은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 대표는 “골프존의 투자금에 시드투자를 합하면 약 100억원 정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억원대의 초기 투자를 받았으므로 대략 골프존이 70억~80억원 정도의 투자를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골프존과의 인연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이 대표가 한 포럼에 갔다가 스타트업 대표로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 명함을 돌렸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이 골프존에서 시뮬레이터 쪽을 담당하는 사업 총괄이었다. 그는 김영찬 골프존 회장이 뇌 과학쪽에 관심이 많다는 걸 설명해줬고, 그렇게 투자까지 연결이 됐다. 스타트업으로서는 든든한 전략적 투자자를 만난 셈이다. 이 대표는 “김 회장님이 그리는 비전과 와이브레인의 비전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투자금은 앞으로 우울증 뿐 아니라 경도인지장애, 조현병, 뇌졸중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쓸 계획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비전문가인 기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일종의 ‘기계 마약’으로 남용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었다. 쉽게 말하면 기능이 저하된 부분에 자극을 줘서 기능을 살리는 건데, 이걸 마구 쓰면 마약처럼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런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와이브레인 솔루션의 자랑 중 하나”라고 했다. 기계 사용에 대해서도 약을 먹듯 의사가 처방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세 번 10분씩만 쓰도록 세팅을 하면 그 이상은 사용자가 쓰지 못하도록 콘트롤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기계로 뇌를 제어 한다’는 일반인의 막연한 거부반응은 이 회사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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