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통신망 '좌초' 위기] 사고 터지면 카톡 쓰는 경찰·소방관…재난통신망 10년 넘게 '표류'

입력 2017-03-30 18:59  

재난땐 "망 구축" 반짝 논의
공무원 복지부동에 진척 안돼
정부 믿은 중소기업만 '자금난'

국제표준된 한국 LTE 재난망 구축작업 계속 지연돼
내년 평창 활용 물건너 가…세계시장 선점 기회 사라져



[ 김현석/박재원 기자 ]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의 소방관들은 무전기 서너 대를 갖고 있었다. 소방본부가 사용하는 극초단파(UHF) 무전기와 지역별로 쓰는 초단파(VHF) 무전기, 경찰 군 등과 통합된 주파수공용통신(TRS) 단말기, 그리고 현장 경찰과 소통하기 위해 빌린 경찰 무전기 등이다.

이는 경찰 소방 군 해경 등이 각각 별도 통신망을 쓰고 있어서다. 2000년대 초 이들의 통신망을 통합한 TRS가 구축됐지만, 예산상 제약으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만 터진다. 농촌·도서 지역에서 사고가 나면 경찰 소방관 등은 임시로 카카오톡을 연결해 쓰는 게 다반사다. 테러 등 보안이 필요한 사고가 터질 경우 다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월호 사고 터지자 서둘더니…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이후 제안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통신망)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다시 부랴부랴 시작됐다. 지진 사고 등이 발생할 때 소방과 경찰 해경 군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대응 조직이 통일된 지휘체계 아래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신 롱텀에볼루션(LTE) 기술 기반의 재난안전망(PS-LTE)을 만들면 경찰 소방 군 등 8대 기관이 하나의 단말기로 소통할 수 있다. 또 목소리뿐 아니라 현장 동영상, 사진도 공유할 수 있다.

주관부처인 국민안전처는 2014년 계획 수립 때 올해까지 전국 망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바꾼 계획에서도 올해 1단계로 강원 충청 등 중부 지역에 망 구축을 끝내고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운용하겠다는 목표였다.

미국 영국 등도 재난통신망 구축을 추진 중이어서 한국 기업들이 노하우를 쌓을 경우 세계 시장 개척이 가능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업계는 지난해 3월 세계 이동통신 표준화 기구인 3GPP에서 한국의 PS-LTE 규격을 재난통신망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복지부동 vs 잘못된 사업계획

하지만 세월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식고 작년 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재난통신망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 2014년 당시 예비적정성 검사를 면제한 기획재정부는 작년 4월 시범사업이 끝나자 국민안전처에 재검증을 요구했다. 국민안전처가 6개월간 재검증을 거쳐 사업계획을 내자 작년 12월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적정성 재검토를 맡겼다. 올 5월까지 재검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내년 2월 평창올림픽 때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KDI 관계자는 “검토에 아직 서너 달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작년 시범사업이 실패해 사업이 늦어졌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에서 통신망 커버리지가 당초 목표인 89.5%에 훨씬 못 미쳤다”며 “이에 따라 검증을 요구했고 국민안전처가 1000억여원을 늘린 1조9000억원 규모의 사업계획을 제출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와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시범사업에서 커버리지가 42%로 나왔지만 SK텔레콤 등 통신사의 고정 기지국 기준 커버리지가 48%임을 감안하면 실패한 게 아니란 얘기다. 높은 산과 바다, 호수 등을 다 커버할 필요가 없어서다. 김남 충남대 교수는 “고정 기지국 외에 배낭형 기지국, 드론 등을 활용해 커버리지를 넓히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투자한 중소기업들만 ‘죽을 맛’

문제는 사업 지연으로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65억~70억달러를 들여 PS-LTE 기반의 재난통신망 ‘퍼스트넷’을 구축하기로 하고 지난 29일 AT&T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AT&T는 6월부터 망 구축을 시작한다.

정부 약속을 믿고 투자한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민기 에이엠텔레콤 대표는 “평창올림픽에서 우리 기술을 알리기 위해 산·학·연이 하나가 돼 국제표준화까지 마쳤다”며 “하지만 최순실 사태가 터진 뒤 기재부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회사는 단말기 개발에 130억원을 투자했지만 지금까지 거둔 매출은 25억원이 전부다.

남재국 FR텍 사장도 “재난통신망 기지국 개발에 수십억원을 투자했는데 사업이 지지부진해져 지난해 5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말했다.

■ 국가재난통신망

지진 테러 등 국가 재난이 발생할 때 일사불란한 대응을 위해 경찰 소방 군 해경 의료기관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지방자치단체 등 8대 기관을 통합 구축하려는 통신망.

김현석/박재원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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