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희곡은 파괴된 질서를 바로잡는 데 초점
■ 기억해 주세요^^
인간은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을 싫어한다. 이 심리를 비극과 희극을 통해 풀어낸 작가가 셰익스피어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최재서(崔載瑞: 1908~1964)에게 한 학생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그리고 단 한 권의 책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6·25전쟁 발발 1주일 전 연세대 영문과 수업 중에 벌어진 일이다. 급작스러운 피난길에 나서야 했던 최재서는 정말 단 한 권의 책만을 곁에 둘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활자가 깨알처럼 박힌, 영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이었다.
영문학자 최재서의 셰익스피어 사랑
최재서는 전쟁 기간 내내 이 책을 끼고 살았다. 사전도 없이 책을 읽느라, 단어나 표현이 어려운 대목을 만나면 골똘히 생각하며 겉장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이 같은 3년간의 정독 결과물이 1963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셰익스피어 예술론》이다. 한국 학자가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일관된 논리로 분석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는 유일한 시도다.
최재서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핵심을 ‘질서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의 사극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정치적 무질서를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비극은 도덕적 질서의 파괴와 회복을 그린 작품이다. 희극, 로맨스 등 다른 작품들도 사회적 질서, 초월적 질서, 자연적 질서의 파괴와 이를 회복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보았다. ‘질서의 회복’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불멸의 가치를 획득한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경제학, 국제관계학 등을 공부한 제이미 홈스(미국 싱크탱크 뉴아메리카 연구원)는 최근에 펴낸 책 《난센스-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는 법》에서 ‘종결 욕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종결 욕구란 ‘어떤 주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 즉 혼란과 모호성을 없애주는 답변을 원하는’ 심리학 용어다. 혼란스럽고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러한 상황 자체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욕구다.
질서가 깨진 상태를 불편해 하는 인간
인간은 ‘질서가 깨진 상태’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뇌는 때로 우리를 속인다. 자기에게 불편한 상황의 일부만을 이해하고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킨 뒤 ‘상황을 종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의 결과이며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보처리’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수많은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미각적, 촉각적 그리고 육감적 정보를 접하고 이를 처리한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슷한 정보를 한 묶음으로 모으고 단순화하며 각자의 목표와 상관없는 혹은 상관이 덜한 정보를 무시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상황을 종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종결 욕구가 강하면 편향이 일어난다. 처음 생각한 답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구축한 ‘질서’에 집착하면 편견이나 선입견에 휘둘리기 쉽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지식 및 정보와 달라 낯설고 생경하다. 그것을 익히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이러한 불편을 견디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
심리학자 올포트 “성급한 결론 피하라”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그의 저서 《편견의 본질》에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분석한다. “그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신속하고 확정적인 해답에 대한 욕구’와 ‘과거의 해결책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으며 계획을 세울 때 ‘익숙하고 안전하며 단순하고 확실한 것에 집착’하고 ‘문제와 관련된 모든 측면을 보지 못한다.’” 홈스는 종결 욕구를 다스리고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을 제시한다. 불편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지 않고 상황을 견디는 능력이다. 소극적 수용력을 지닌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종결 욕구가 강렬하지 않다. 그래서 편향된 결정을 내릴 확률이 적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도 소극적 수용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집필 과정 자체가 ‘질서가 깨진’ 상황을 창조하고 이를 차분하게 수습하는 긴 호흡의 노력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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