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1세대 기업가 이병철·정주영·구인회·김종희·서성환…6·25전쟁 폐허와 피난 속에서 사업 기회를 찾았다

입력 2017-03-31 17:02   수정 2017-04-24 08:42

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10) 피난지의 기업가들



현재의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 소속이지만 1997년 이전까지는 독립된 자동차 기업이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래의 기아차를 세우고 성공시킨 김철호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에 가서 사업을 배우고 돈을 벌어 한국에 기업을 일으킨 청년의 이야기다.`

■ 기억해 주세요^^

이병철: 탄피와 고철 모아서 번 돈으로 설탕사업 시작
구인회: 플라스틱 제조기계 들여와 화학산업 일구다
정주영: 미군공사 하면서 쌓은 건설실력으로 해외진출
김종희: 피난지 부산에서 미군화약 관리용역으로 돈 벌어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한을 침략했다. 한국군은 속절없이 밀렸다. 모든 땅을 뺏기고 낙동강 방어선 이남만 남았다. 부산은 몰려든 피난민으로 몸살을 앓았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집, 먹을거리, 입을 옷···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조차도 기회로 바꾸어낸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은 피난지의 기업가들 이야기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도 부산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무역업을 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서울에 삼성물산을 세우고 수출입업을 시작했다. 돈이 제법 벌리던 차에 전쟁이 터져서 빈손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피난길에 대구에 들렀는데 양조장을 맡아 운영해주던 친구가 그동안 벌었다며 뜻하지 않은 돈을 건넸다. 이병철은 그 돈으로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다시 열었다. 수출할 상품을 찾던 중 기막힌 것을 발견한다. 전장 터에 버려진 탄피와 고철들이다. 이병철은 탄피와 고철들을 모아서 일본 등에 수출했다. 수출대금으로는 설탕과 옷감, 종이, 약품 같은 것을 수입해서 팔았고 큰돈을 벌었다. 1953년에는 그 돈으로 설탕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제일제당(지금의 CJ)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LG그룹의 창업자인 구인회도 전쟁 중에 과감한 투자를 해서 성공했다. 구인회는 원래 마산에서 포목점을 했는데 해방과 더불어 부산으로 옮겼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화장품 제조·판매를 시작했다. 락희(LG의 L, G는 GoldStar 의 첫자)화학의 시작이다. 장사가 잘 됐지만 유리로 된 화장품 병뚜껑이 자주 깨져서 골칫거리였다. 미군 PX에서 나온 화장품 뚜껑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알고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든 덕분이었다. 플라스틱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첨단 물질이었다.

구인회는 전쟁 중인데도 모험을 감행한다. 온갖 난관을 뚫고 미국에서 플라스틱용품 제조 기계를 수입해 들여왔다. 전 재산을 건 모험을 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 기계로 화장품 병뚜껑뿐 아니라 플라스틱 빗, 플라스틱 바가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생산되었다. 한국 화학산업의 본격적 출발이었다.

미군과의 비즈니스로 기회를 잡은 기업가들도 있다. 한화그룹의 창업자인 김종희가 그런 사람이다. 김종희는 해방 전에 조선화약공판이라는 기업의 기술자였다. 화약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한국인이었다. 해방 후 정부관리 하에 들어간 조선화약공판에서 관리인직을 수행했다. 전쟁이 나자 김종희도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미군의 화약들이 항구에 방치된 것을 본 김종희는 미군 측에 제안해서 화약관리용역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 일로 큰 돈을 벌어서 나중에 조선화약공판을 사들였다. 한국화약그룹(한화그룹)의 출발이다.

한편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와 건설 업체로 먹고 살만해져가고 있던 차에 전쟁을 만났다. 대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나서 부산에 도착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동생 정인영이 미군공병부대의 통역장교로 취직을 했다. 정주영은 동생의 소개로 미군의 공사들을 따냈고, 훌륭하게 마무리해서 신용을 쌓았다. 미군 10만명을 위한 막사를 한달만에 완성한 것, 폐허가 된 속에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숙소를 만들어낸 것, 청보리 싹을 옮겨 심어서 겨울인데도 유엔군 묘지를 푸르게 꾸며 놓은 것 등의 이야기는 정주영이 미군에게 신용을 쌓은 과정을 잘 보여준다. 현대건설이 1965년 한국최초의 해외건설사업인 태국 파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군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 덕분이었다.

개성출신 화장품 장수 서성환도 전쟁 중에 성공했다. 부산 피난지에서 일본 화장품의 짝퉁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만 연구 끝에 ‘ABC 포마드’ 라는 독자적인 남성화장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시작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쟁은 파괴와 후퇴와 고통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생산적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6·25전쟁의 고통을 의미있게 극복한 사람들 중에는 훗날 큰 기업을 이룬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쟁은 파괴와 후퇴와 고통일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생산적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6.25전쟁의 고통을 의미있게 극복한 사람들 중에는 훗날 큰 기업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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