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7) 장시(江西)] 의리를 숭상하는 순박한 이들의 터전

입력 2017-04-03 17:39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한국인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일 수 있다. 조금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기세등등한 지역에 어딘가 눌려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곳이 배출한 문인 이름 하나만 대면 “아~!”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도연명(陶淵明)이다.

1600여년 전 태어나 활동했던 중국 최고 전원(田園)시인으로 우리에게는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이 장시(江西)라는 곳은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곳 사람들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 우스개 하나를 먼저 소개하자.

외계인이 중국에 떨어졌다. 각 지역 사람들의 반응이다. 먼저 관본(官本)의 관념이 짙은 베이징 사람은 “당신 직급이 뭐냐”고 묻는다. 이재(理財)에 밝은 상하이 사람은 그를 데려다 전시회에 세운다. 밖으로 진출하기 좋아하는 원저우(溫州) 사람은 외계인과 함께 우주로 진출할 계획을 만든다. 먹기 좋아하는 광둥(廣東) 사람들은 제대로 씻긴 뒤 어떻게 요리할지를 두고 궁리한다. 놀기 좋아하는 쓰촨(四川)에서는 차 한 잔 마신 뒤 함께 마작을 두자고 제안한다. 가짜를 잘 만들어내는 허난(河南) 사람들은 복제판 외계인 제작에 들어간다.

‘귀거래사’ 도연명을 배출한 곳

중국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입담이다. 여기서도 장시 사람들은 빠진다. 뭐라고 특별하게 내세울 게 없는 성격으로 이름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특징을 말로 규정하자면 ‘무색무취(無色無臭)’다.

장시는 인문(人文)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강남 지역 문화권의 중성(中性)지대다. 중국 남부 권역의 중간지대로 춘추전국의 옛 개념으로 볼 때는 오(吳)와 초(楚)를 포괄했다. 그래서 吳頭楚尾(오두초미)로 적었던 지역이다. 아울러 전란 등을 피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중간 경유지였다. 더 남쪽의 광둥이나 서남 또는 동남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이 모였다가 떠나는 곳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곳은 북방에서 벌어진 전란과 재난을 피해 이동했던 사람들의 1차 집결지였다.

전란과 재난을 피해 이동한 사람들에게는 혈연(血緣)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따라서 북부에서 발달했던 유가(儒家)의 관념이 뚜렷하다. 이곳에 현재 대규모 이동 종족(宗族)의 사당(祠堂)이 8994개가 남아 있어 중국 전역의 최고라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현재 이름 장시는 당나라 때 이곳을 ‘강남(江南)의 서도(西道)’라는 행정 구역으로 부르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곳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글자는 (감)이다. 장시의 가장 큰 하천 이름이며, 지금도 이곳을 대표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성 전체 외곽은 높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보양(陽) 등 대형 호수와 갈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릉(丘陵)이 발달해 있다. 본래는 중국 화둥(華東)과 화난(華南)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어서 상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무색무취하면서도 儒家 관념 뚜렷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중국 남부와 중부를 잇는 철길이 인근의 후베이(湖北)로 이어지면서 낙후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인구는 2015년 기준 4565만명, 행정도회지는 기의(起義)로 유명한 난창(南昌)이다. 중국 남부 권역에서는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장시 사람들이 비록 지금은 개성이 없다는 평을 듣지만 달리 생각해 볼 점도 있다. 중국의 일반 지역 민풍(民風)은 대개 모략의 정신세계와 맥을 함께한다. 따라서 돈 버는 데 능하고, 때로는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도 잘 사용한다. 그에 비해 장시 사람들은 순박(淳樸)함이 자랑이다. 비록 ‘무색무취’의 몰개성으로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실제 면모를 들여다보면 다른 지역의 중국인에 비해 솔직하고 의리(義理)를 숭상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점을 장시의 큰 장점으로 꼽는 중국인도 없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아마도 순수한 자연의 마음을 시로 옮겨 중국 전원 시파(詩派)의 흐름을 만들어낸 도연명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송(北宋)의 관료이자 문인으로 중국 최고 강성 개혁가로 꼽히는 왕안석(王安石)이 장시 출신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송이 패망할 때 절개를 지키며 죽음으로 절의(節義)를 지킨 문천상(文天祥)도 이곳 출신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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