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리뷰] '아버지와 이토씨' 행복이 뭐 별건가…오늘 더 그리운 이름 '가족'

입력 2017-04-04 18:34  

일본영화 '아버지와 이토씨' 오는 20일 개봉
30대 딸, 50대 남자친구 그리고 70대 아버지
기묘한 동거 설정 너머 전하는 가족의 의미




식구 (食口) :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우리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식구'라는 이름으로 혼용해 사용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이토씨'는 가끔 도망쳐버리고 싶지만 그럼에도 움켜잡게 되는 가족간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영화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서른 네 살의 여자 아야(우에노 주리)와 스무살 연상의 남자친구 이토씨(릴리 프랭키)가 살고 있는 집에 올해 일흔 넷, 아야의 아버지 (후지 타츠야)가 한지붕에 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야는 아버지를 모셔달라는 오빠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고 돌아왔지만, 이미 아버지는 이토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 무단 입주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버지는 길고 긴 잔소리를 늘어놓고, 아야는 늘 불만이지만 남자친구 이토씨만은 아버지를 위해 2인용 식탁에 부족한 의자까지 사다 놓고 어색한 동거를 즐긴다.

이토씨는 아야와 아버지 사이 환기구 같은 존재가 된다. 아버지와의 삶이 불편하다고 투정하는 아야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는 삐걱대는 아야와의 관계에서 오히려 이토씨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남몰래 숨겨왔던 비밀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전부라 여기는 수수께끼의 상자를 들고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은퇴를 하고, 홀로 남았다. 아야에게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환상은 없다. 그저 이토씨에 의해 의해 한 걸음 내딛을 뿐.


'아버지와 이토씨'는 재기 발랄한 설정이라고는 하나 보수적인 한국인의 정서상 기묘한 동거로 비추어진다. 30대의 여자가 50대의 남자친구와 함께 70대의 아버지를 모신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조금 남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겪고 있고, 앞으로 겪을지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일본 영화 특유의 문법으로 유쾌하고 또 차분하게 풀어낸다. 원작으로 한 나카자와 하나코의 동명 소설의 힘이다.

영화가 원작 팬들까지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되는 까닭은 적절한 캐스팅에 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타'인 딸 역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드라마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우에노 주리가 연기했다.

남자친구 이토씨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릴리 프랭키, 아버지 역은 일본 중견배우 후지 타츠야가 제 몫을 다했다. 세 사람은 소설 속에서 상상했던 캐릭터가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밀착된 연기를 펼쳤다.

'아버지와 이토씨'의 메가폰을 잡은 타나다 유키 감독은 섬세한 연출로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또 영화 '심야식당'의 촬영감독 오오츠카 료가 아야의 집과 일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옮겨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연로한 부모와 취업,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고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자성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작은 식탁에 도란도란 둘러 앉아 온 가족과 함께했던 저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다. 상영시간 119분, 4월 20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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