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경영권 프리미엄 혜택 소액주주에게도

입력 2017-04-05 17:59   수정 2017-04-06 05:52

반기업정서 부추겨 대기업 옥죄는 풍토
소액주주 권리 찾아주는 게 경제민주화

유창재 증권부 차장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인 지난해 삼성전자의 미국 하만인터내셔널 인수. 80억달러(약 9조원)에 달하는 이 M&A의 승자는 삼성전자뿐이 아니었다. 하만 주식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발표 직전인 지난해 11월11일 종가보다 28% 높은 주당 128달러를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직전 30일 동안 평균 종가에 비해서는 37%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 합병안은 지난 2월 전체 주주의 67%, 참석 주주의 95%에 달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역시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 M&A인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이 M&A의 승자는 현대상선 등 현대증권 기존 대주주와 KB금융이었다. KB금융은 지난해 4월 최대주주가 보유한 지분 22.56%를 1조2375억원에 인수했다. 주당 2만3182원. 3월31일 종가 6870원에 237%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 거래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던 현대상선은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현대증권 주식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이로부터 6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현대증권 주식 5주를 KB금융 1주로 돌려받아야 했다.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이었다. 합병가액은 주당 6766원. 대주주가 매각한 지분 가치의 30%도 안 되는 가격이다. KB금융지주는 이 거래를 통해 현대증권 인수 비용을 주당 1만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지난해 이뤄진 두 M&A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전체 주주가 나눠 가졌지만 한국에서는 지배주주가 모두 가져갔다는 점이다. 똑같이 주주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M&A에서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한국에는 주주평등 원칙이 작동할 법적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증권과 KB금융지주가 미국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주주들은 현대증권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다. 이사회가 전체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사회는 해당 거래가 모든 주주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할 경우 천문학적인 피해보상금을 물게 된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기업을 인수할 때 모든 주주로부터 같은 가격에 주식을 사줘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거나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회사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 대주주가 경영을 못하면 더 좋은 경영자가 공개매수를 통해 기업을 사들일 수 있어 경영권 시장도 살아난다. 지분 100% 인수에는 큰돈이 들기 때문에 투기세력의 적대적 M&A도 막을 수 있다. 구조조정을 위한 M&A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구조조정에는 예외조항을 두면 된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상법 개정안 논의가 한창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법이다.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1주 1표의 주주 평등주의 정신을 훼손한다. 대주주를 옥죄고 차별하는 게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게 경제민주화다.

유창재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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