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외나무다리 대결'…확 달라진 호남 표심
역대 대선에서 진보 후보 중 호남의 압도적 지지 없이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90% 안팎의 지지를 받았다. 호남은 지난 30여년간 진보진영의 핵심 지지기반이었다. “진보정권은 호남이 만든다”는 상징성이 강하다. 호남 민심은 수도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리턴 매치’를 벌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호남 구애’에 올인해온 이유다. 호남은 ‘문-안의 전쟁’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최근 호남 민심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문 후보의 독주에서 안 후보와의 경쟁구도로 바뀌고 있다. 호남이 정권교체를 전제로 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희정 표 흡수도 주요 요인
안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상승세다. 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에서 문 후보는 46%로 여전히 굳건한 1위지만 안 후보(37%)와의 격차는 9%포인트였다. 3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던 한 달 전과는 판이하다. 3월 둘째주(7~9일) 조사까지만 해도 문 후보가 45%, 안 후보가 12%로 문 후보 독주였다. 셋째주(14~16일) 조사에선 47%(문 후보) 대 20%(안 후보)로 여전히 격차가 두 배 이상이었다. 격차가 확 줄어든 것은 국민의당 호남 경선(25일)을 앞둔 넷째주(21~23일) 조사 때로 47%(문 후보) 대 31%(안 후보)였다. 흥행을 거둔 호남 경선 후인 다섯째주 조사(28~30일)에선 격차가 더 줄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 후보는 한 달간 44~47%의 지지율에 변화가 없었다. 그런 사이 안 후보는 지지율을 25%포인트 끌어올렸다. 이젠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 이내로 좁혀져 대등한 게임 양상이다. 지지율 상승의 한 요인은 지지성향이 겹치는 안희정 충남지사 지지층이 안 지사의 후보 가능성이 물 건너가면서 안 후보 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안 지사가 후보가 안 되면 지지층의 30% 이상이 안 후보로 이동한다는 조사 결과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안 후보 지지율 급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해답은 호남의 정서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호남의 최고 목표는 정권교체다. 문 후보의 고공 지지율은 이런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고, 이게 ‘문재인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강했던 호남에서 문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이제 누가 되든 정권교체는 확실하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확신이다. 각종 여론조사의 흐름은 진보진영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보수진영 후보들이 맥을 못추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 합계가 10% 정도에 머물러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강 대결구도다. 누가 이기든 정권교체는 실현되는 셈이다. 호남 유권자들이 안 후보를 대안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 치러진 국민의당 호남경선이 예상을 깨고 9만여명의 선거인단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흥행에 성공한 배경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문 후보의 ‘전두환 표창장 발언’과 문 후보 측의 ‘부산 대통령 발언’ 등이 호남 표심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더 본질적인 요인은 호남 유권자들이 안 후보로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략적 선택은 영남 보수로 넘어가
어차피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된 마당이라면 누구를 뽑는 게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한 호남의 고민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이 우선과제로 꼽은 국민통합과 적폐 청산, 경제살리기 등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누가 더 적합한지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이 한 후보에게 압도적 표를 몰아주지 않는 첫 대선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실화된다면 1987년 대선 이후 30년 만이다.
오히려 호남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략적 선택’을 위한 고민은 영남 보수층으로 넘어갔다. TK(대구·경북) 등 핵심 보수는 보수후보를 밀어야 할지, 중도성향의 안철수 후보를 밀어야 할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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