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안해봐 자소서부터 어려워"
"지방대+女+인문계 뜻 '지·여·인'
명문대라도 '인문계 여성'은 막막"
[ 김예나 기자 ] 꽃 피는 춘삼월. 개강 3주차를 맞은 대학생들의 마음은 미세먼지 습격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설렌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하고 책상에 펼쳐둔 책에 시선을 파묻는 이들이 있다. 취업준비생이다. 명문대생에게도 취업난은 남 일이 아닌 것일까. 지난달 16일 연세대와 고려대 도서관을 찾았다.
연세대 학술정보원 계단을 오르다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지친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말을 붙였더니 역시나 취준생이다. 컴퓨터과학과 3학년인 A씨(25)는 “명문대에 다니는 데다 ‘취업 깡패’라는 공대생인데도 불안하냐”는 물음에 고개를 네 번 끄덕이며 “예전엔 3월이면 개강하고 신입생도 들어오고 신났지만 올해는 3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무섭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연세대 공대생이면 취업 잘 되지 않느냐’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하는데, ‘SKY’나 ‘취업 깡패 공대생’ 그런 건 다 옛말인 것 같다”며 “공대생이라 글을 쓴 경험이 적어서 자기소개서 쓰는 것부터 어렵다”고 토로했다.
6층 휴게공간에서 만난 여학생 B씨(25)는 자신을 ‘화석 선배’라고 소개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도서관 자리를 지킨다는 말이란다. B씨는 “초반에는 친한 친구나 후배들한테 떨어졌다고 말하고 위로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서로가 아무 말도 안 한다”며 “도서관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해 이러다 친구마저 잃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지여인’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지여인은 지방대에 다니는 여대생, 인문대생을 뜻한다. B씨는 “학교 이름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여인’이란 사실은 어쩔 수 없나 보다”며 “채용시장 자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데, 인문대 여학생은 더더욱 자리를 잃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 열람실도 공부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밥을 먹으러 갔는지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기는 해도, 펼쳐져 있거나 쌓여있는 책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C씨(건설사회환경공학부)는 토익 920점에 토익 스피킹 6레벨, 토목기사와 안전기사, 한국사 1급, 한자 2급 자격증도 있지만 “명문대에 다닌다는 점, 나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취업에서 메리트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며 “요즘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스터디를 하는데 NCS는 스펙과는 관계없이 직무 중심 능력만 보는 데다 심지어 학교와 전공도 안 보는 곳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졸업 전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 봄은 직장인이 돼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김예나 한경매거진 기자 ye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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