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경제 개혁의 핵심은 노동 시장의 유연화다

입력 2017-04-09 17:14  

대다수 노동자의 몫을 빼앗는 귀족노조
기업활동 훼방놓고 시장원리 침해할 뿐
경제를 위한다면 '노조의 문제' 해결해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 가운데 뜻깊은 공약을 내건 이는 이인제 자유한국당 후보였다. 그는 노동시장 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하고서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공식 후보가 되지 못한 그만이 우리 경제의 핵심적 문제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상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어느 나라나 경제 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다. 노동조합이 노동 공급을 독점하도록 한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른다. 그런 독점에 기대어 강성해진 노조는 필연적으로 노동시장 작동을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방해한다.

실제로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노조의 폐해들은 열거하기 지루할 정도로 많다. 그렇다고 노조 덕분에 노동자들이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니다. 노조는 자체로 경제를 성장시킬 힘이 없다. 따라서 노조 조합원들의 임금이 생산성보다 빠르게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그들은 힘이 약한 노동자들의 몫을 가져가는 셈이다. 노조에 가입한 10% 이하의 유복한 노동자들을 위해서 나머지 90% 이상의 약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하청업체의 종업원들, 비정규직 및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생되는 셈이다. 조지 오웰의 얘기를 조금 바꾸면, “모든 노동자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평등하다.”

귀족이 세습되는 신분인 것처럼 ‘귀족 노조’의 조합원들은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물려줄 권한이 있다고 확신한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은 바뀌어도, 자신들은 일자리를 유지하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주인이라 여긴다. 그래서 기업의 소유가 바뀌면 파는 쪽엔 ‘위로금’을, 그리고 사는 쪽엔 상당한 주식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매매를 불법적으로 방해한다. 이렇게 노조가 기업가들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니 경제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외국인들은 우리 노동시장을 “독성(toxic)”이라 평해왔다.

노조의 문제는 경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 수가 많고 자금이 풍부하므로, 노조는 어떤 집단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나 좌파 정당은 실질적으로 노조의 정치 부서(political arm)다. 즉 좌파 정당은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이용하는 정치 조직이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은 애초에 노조가 설립했다. 그래서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세력은 늘 노조였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의 가장 든든한 지지 세력은 노조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조는 늘 가장 왼쪽 정당의 후원자였다. 해방 뒤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박헌영이 주도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바뀌게 된 계기인 1945년 9월의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참가자들의 다수가 노동자들이었다. 이후 남한의 노조는 조선공산당의 가장 강력한 기반이었다. 노조는 태생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자양으로 삼는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들에선 반체제적 성격을 다소간에 띠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선 노동법이 노조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노조를 설립하게 되면서,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부의 성향까지 바꿨다.

이런 사정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조건반사적으로 노조를 지지하는데, 우리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려는 정치 지도자의 노력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시민들이 노조가 제기하는 중대한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지도자도 강성한 노조에 맞서 노동시장을 개혁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가 그 점을 괴롭게 일깨워준다. 우리 시민들은 사회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투자에 아주 인색해서,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고 늘 민중주의에 휩쓸린다. 시장경제에 관한 지식을 전파해야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진 짐은 이제 더욱 무거워졌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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